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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국사 석가모니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3069
한자 奉國寺 釋迦牟尼佛
이칭/별칭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태평동 216-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엘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22년연표보기 - 봉국사 석가모니불 제작
이전 시기/일시 1939년 - 봉국사 석가모니불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4번지 칠보사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연표보기 - 봉국사 석가모니불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보물 제2004호 지정
현 소장처 봉국사 석가모니불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9길 51[삼청동 4]
원소재지 봉국사 석가모니불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태평동 216-2]지도보기
복장 유물 소장처 봉국사 석가모니불 복장 유물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9길 51[삼청동 4]
성격 불상
재질 목조 개금
크기(높이) 높이 117.0 cm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 칠보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 칠보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봉국사에 있던 조선 시대 불상.

[개설]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1622년(광해 14)에 광해군의 비 문성군부인 유씨(文城君夫人柳氏)가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자인수양사(慈仁壽兩寺)에 봉안되었다가 1674년(현종 15)에 봉국사가 창건되자 봉국사로 이안(移安)되었다. 1933년 발행된 『조선총독부관보』 제1814호와 1939년 작성된 『봉국사 이전 허가에 관한 건(奉國寺移轉許可願ニ關スル件)』에는 봉국사의 불상으로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봉국사의 불당으로 대광명전과 나한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봉국사 비로자나불은 대광명전에 안치되었고,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나한전에 있었던 보인다.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1939년 봉국사의 법통과 자산이 경성부 삼청정 4번지 연주암 포교소[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4번지 칠보사]로 이전되면서 현 서울시 칠보사로 옮겨졌다. 1939년 경성부 창신정 지장암으로 옮겨진 봉국사 비로자나불과 동일한 복장물이 발견되면서 조성 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2018년에 보물 제2004호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명은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七寶寺 木造釋迦如來坐像)’이다.

[형태]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높이가 117.5cm에 달하는 중형의 목조 좌상이다.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로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한 모습이다.

[특징]

봉국사 석가모니불[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복장물과 봉국사 비로자나불[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복장물에서 동일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1622년 청계사 개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1627년~1631년 용복사 개판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1924년 작성된 「곤명 석씨 축원문」도 나왔다. 따라서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봉국사에 안치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봉국사 석가모니불은 성남 지역의 불교사를 대변하는 유물이다. 현재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으로 현존하고 있어 봉국사의 중요성을 제고(提高)하는 데 의의가 있다. 발견된 복장물을 통해 삼청동의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봉국사의 주존이었다는 것은 그 역사적 가치를 말해준다. 국토개발 사업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봉국사 석가모니불의 모습은 우리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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