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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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윤혜숙 |
[정의]
경기도 성남 지역의 고대 역사에 관한 개관.
[개설]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 주변의 비옥한 평야가 있는 성남 지역은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약 1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지역이며, 삼국시대에는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던 지역이었다. 신라는 성남 지역을 비롯한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삼국시대 말부터 삼국 통일을 이루기까지 정치적인 측면은 물론 경제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선사 및 초기국가시대의 자취]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의 한 야산 사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밀개와 다각면원구라고 하는 사냥돌이 발견되었다. 유문암재 밀개는 길이 4.5㎝에 불과한 소형의 석기이지만 성남 지역의 주민 거주 시점을 확실히 1만년 이전까지 소급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주변의 다른 지점에서는 형태적인 정형성이 확연한 석영암재 석핵/찍개도 채집되어 일대에 구석기 문화층이 부존할 가능성을 매우 높여 주었다. 신석기시대 유물은 아직 성남 지역에서 발견 되지는 않았으나 탄천이 한강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인 암사동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 성남시 일원에도 분명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활동하였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은 태평동, 수진동, 사송동, 운중동, 삼평동, 하산운동, 도촌동 등지의 약 10여 기와 분당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조사된 171기를 포함하면 약 180여 기의 고인돌이 발견 되었으며, 금토동, 삼평동, 수진동 등 고인돌 발견 지점과 멀지 않은 곳에 무문토기가 출토되는 등 청동기시대 질그릇 조각과 석기 등이 출토되는 유물 산포지가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어 성남 지역에서 탄천 주변의 비옥한 충적지를 배경으로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여겨진다.
[삼국의 쟁패지]
성남 지역은 백제의 도성이 있었던 한강 변에서 8㎞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이른 시기부터 백제국의 중심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5백년의 한성백제시기 성남 지역은 한성백제의 중심지에서 가깝고 용인, 안성, 진천 등 내륙 지역으로 가는 주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군역이나 성곽이나 제방 축조 등의 사역에 주로 동원되고, 백제 도성 지역으로 공급하기 위한 농산물과 토기나 목기 등 생필품의 생산지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남하에 금강 유역으로 밀려가면서 백제와 신라가 다시 한강 유역을 탈환할 때까지 성남 지역은 80여 년간 고구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고구려가 설치한 북한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551년 신라 진흥왕은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10개 군을 빼앗고, 553년에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성남 지역을 비롯한 한강 하류 지역마저 급습하여 탈취한 뒤 그 곳에 신주를 설치한 후 결국 신라가 통일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557년(진흥왕 18)에 북한산주, 568년(진흥왕 29)에 남천주, 618년(진평왕 40)에 한산주, 660년(문무왕 원년)에 남천주, 664년(문무왕 4)에 한산주, 757년(경덕왕 16)에 한주로 주의 명칭이 변경되었다.
[신라 최대의 주장성]
672년(문무왕 12) 당나라로부터 한강 유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인 4,360척에 달하는 주장성(晝長城)을 구축하였는데, 이 주장성의 위치가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남한산성 성내에서 많은 양의 신라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그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신라 말기 지방 세력의 성장]
신라 말기 성남 지역은 경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군현의 행정 체계 밑에서 촌락민을 통제하는 구실을 담당해 온 촌주(村主)들이 호족 세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많았으며, 왕규(王規)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호족 중 하나로 꼽힌다. 후삼국의 출현 무렵 성남 지역이 속해 있던 한주 지방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弓裔)의 휘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 후 918년 왕건에 의해 궁예가 축출되면서 성남 지역은 자연히 고려의 지방 통치 조직에 편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