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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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倉庫川任觀周磨崖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종진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67년 - 창고천 임관주 마애명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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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창고천 암벽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창고천 내 |
성격 | 금석문|마애명 |
양식 | 해서체 |
관련 인물 | 임관주 |
크기(높이) | 50㎝ |
길이 | 75㎝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고천 절벽에 새겨진 글자.
[개설]
창고천 임관주 마애명은 창천리의 일주도로 변에 있는 창천교로 내려가 계곡을 따라 약 300m 정도를 내려가면 서쪽 암벽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다. 1767년(영조 43)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에 유배 왔던 임관주(任觀周)[1732~?]가 유배에서 풀린 다음날 시를 써서 새겼다고 한다.
[형태]
가로 약 75㎝ × 세로 약 50㎝의 너비에 해서체로 아래와 같이 세로로 음각되어 있다.
임관주(任觀周)
시출형문일(始出荊門日) 가시나무 문 처음으로 나서는 날에
선심침하천(先尋枕下川) 베개머리 아래 시내를 맨 먼저 찾으니
창암삼곡립(蒼巖三曲立) 푸른 벼랑 세 물굽이 둘러 서 있고
단폭만풍변(短瀑晩楓邊) 늦단풍 물든 가녘에 작은 폭포 흐르네
정해추(丁亥秋) 1767년 가을에
[현황]
창고천 임관주 마애명은 창고천이 흐르는 안덕계곡의 유일한 마애명이다. 새겨진 지 240여 년의 세월이 경과했지만 대부분의 글자가 육안으로 판독이 가능하다. 마애명이 새겨진 벼랑의 암질이 단단하여 풍화에 의한 마모가 심하지 않으나 이끼가 많이 덮여져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창고천 절벽에 새겨진 임관주 마애명은 제주의 대정현 유배인의 유적 중 하나이다. 수려한 안덕계곡 절벽에 새겨진 유일한 마애명으로, 당시 시정(施政)을 논하고 대신들을 논척(論斥)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었던 임관주가 유배에서 풀려 창고천을 방문하여 한시를 지어 남긴 자취를 통해 유배객이 해배되었을 때의 제주에서의 여정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보존 가치가 크다. 또한 안덕계곡의 수려한 풍광에 조선 시대 전형적 정언(正言)의 모습이 더해져서 풍광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