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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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鹿山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제정 시기/일시 | 1658년(효종 9) - 제주목사 이회(李檜) 대규모 말 목장인 녹산장(鹿山場) 설치 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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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녹산장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대록산 |
관할 지역 | 녹산장 - 서귀포시 성읍리 따라비 오름 일대 |
성격 | 목장|말목장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대록산과 성읍리 따라비 오름 일대의 평원에서 조선 후기에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대규모 말 목장.
[개설]
녹산장은 1709년(숙종 35) 이후 산마장(山馬場)이 침장(針場)·상장(上場)·녹산장(鹿山場)으로 개편되면서 등장했다. 녹산장의 공간 규모는 동서 75리, 남북 30리 정도였다. 녹산장 운영이 유명무실해지자 주민들이 녹산장에서 경작하기도 했다. 1860년경 녹산장의 둔마수는 1,031필이고 목자는 103명이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공마제가 폐지되면서 폐장되었다. 1930년대는 녹산장 터에 가시리 마을공동목장이 설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녹산장은 산마장의 하나로, 개인 목장을 운영했던 김만일(金萬鎰)[1550-1632]이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 전마(前馬)를 헌마한 것이 계기가 되어 1658년(효종 9) 제주목사 이회(李檜)의 건의에 의해 설치된 목장이었다. 조정에서 필요한 어승마(御乘馬)와 전마·역마(役馬)들을 생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녹산장은 1702년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산장구마(山場驅馬)」에 명칭과 공간경계가 등장한다. 1794년(정조 18)에 어사 심낙수(沈樂洙)가 올린 「산마목장신정절목(山馬牧場新定節目)」에는 녹산장에서 목축기능이 약화된 후 농경지로 이용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녹산장은 추위에 강하고 튼튼한 산마(山馬)을 생산하는 목장이었다. 연중 방목을 통해 생산된 산마들은 조정에 어승마·전마 등으로 공급되었다. 녹산장에서도 목축과 함께 인근마을 주민들에 의해 개간이 이루어져, 구경당금(舊耕當禁)·신정허경(新定許耕)·천(川)·임수(林藪)·갑마장(甲馬場)·간장(間墻)으로 구성되었다. 구경당금 구역은 한때 경작이 이루어졌으나 언젠가부터 경작을 금하여 목축을 했던 장소로 현재 정석비행장터로 판단된다. 신정허경 구역은 새롭게 경작지로 지정된 곳으로, 영아리 오름 일대로 보인다.
[변천]
녹산장은 현재 표선면 가시리 마을공동목장·제동목장[1973]·정석비행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녹산로(鹿山路) 동쪽 가시리 마을공동장에는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녹산장은 제주도에 산마장이 운영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역사유적이면서 가시리 주민들의 다양한 목축문화를 탄생시킨 산실이었다. 녹산장 내에는 역사유적으로 목장 경계용으로 쌓은 돌담인 상잣성·중잣성·하잣성 그리고 간장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말들의 수와 건강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원장(圓場)이 존재했다. 녹산장은 제주도의 목장사와 목축문화사가 응집된 상징적 장소이며, 녹산장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역사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