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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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兎山里 |
이칭/별칭 | 웃토산,북토산,알토산,남토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범훈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토산리는 고려 시대 속현(屬縣)의 하나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표선면의 여섯 개 법정리 가운데 가장 서쪽에 위치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감귤재배가 주요 소득원이다.
[명칭 유래]
토산리는 토산봉[옛 이름은 토산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토산1리는 토산봉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웃토산’, 또는 토산봉 북쪽에 있다 하여 ‘북토산(北兎山)’이라 하였다. 토산2리는 토산봉 남쪽 바닷가 일대에 형성된 해안마을이다. 토산2리의 옛 이름은 ‘웃토산’과 대응하여 토산봉 아래쪽에 있다는 뜻으로 ‘알토산’ 또는 토산봉 남쪽에 있다 하여 ‘남토산(南兎山)’라 하였다. ‘토산’은 지형이 토끼와 비슷하다 하여 ‘토산(兎山)’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토산리는 1천여 년 전 제주부씨(濟州夫氏)가 토산봉 서쪽 생수가 솟는 지역에 정착함으로써 마을 시초가 마련됐다고 한다. 이후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성산읍 고성리에서, 경주김씨(慶州金氏)가 남원읍 의귀리에서 이주함으로써 마을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한다. 14세기 1300년(고려 충렬왕 26년) 제주 열네 개 군현제의 하나로 토산현(兎山縣)이 출현하였다. 토산현은 1416년(조선 태종 16년) 제주 삼읍 중 하나인 정의현에 속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토산을’, 즉 토산촌(兎山村)이란 지명은 17세기 말 편찬된 고지도 『탐라도』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1780년(정조 4)의 『제주읍지』에는 제주도 지역의 삼읍(三邑) 소속의 면(面)·이(里) 단위 명칭이 전체적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토산리는 정의현 중면(中面)에 속하였다.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제주삼읍전도(濟州三邑全圖)』를 보면 토산리는 정의군 동중면에 소속되어 있다. 1914년 제주군 동중면 토산리로, 1915년 도제(島制) 실시로 제주도(濟州島) 동중면 토산리로, 1935년 동중면이 표선면(表善面)으로 바뀌면서 표선면 토산리가 되었다.
해방 후 1946년 8월 1일 도제(道制) 실시로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가 되었고,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토산리 서쪽은 건천(乾川)인 송천(松川)을 사이에 두고 남원읍과 경계를 이룬다. 동쪽은 세화1리와 세화2리, 북쪽은 가시리,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다. 토산봉 위쪽인 토산1리는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염통오름 등 작은 오름이주위에 분포하여 있다. 아래쪽인 토산2리는 마을 전체가 해안에서 500m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토산리 면적은 9.162㎢로, 표선면의 여섯 개 법정리 가운데 가장 작다. 지목은 밭 3.012㎢, 과수원 2.748㎢, 임야 2.187㎢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2012년 5월 31일 현재 409세대에 1,020명[ 남자 543명, 여자 46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법정리인 토산리는 토산1리와 토산2리 두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토산1리는 본동(本洞), 월지동(月旨洞), 토산2리는본동(本洞)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토산1리의 주요 재배작물은 감귤과 더덕·콩·당근·무 등이며, 키위 등 시설 재배도 활발하다. 토산1리는 고려 시대 토산현의 읍사가 들어섰던 유서 깊은 지역 등을 기반으로 전통문화마을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주요 소득원이 감귤 재배인 토산2리는 2003년에 정보화마을 운영을 시작하였다. 마을 주민들로 정보화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주민 정보능력 높이기, 농작물의 품질 향상 등에 힘쓰고 있으며, 2005년에는 녹색농촌체험마을로도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