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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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Jamyeongjuk and Samragj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최도식 |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자명죽과 삼락정에 관한 이야기.
[개설]
홍견이 자명죽을 얻어 활을 만들어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후 노구의 몸으로 고향인 맹방으로 돌아와 동생 홍확·홍광과 더불어 삼락정을 만들어 우애를 다진 이야기이다.
[내용]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의 덕산해변에는 덕봉산(德峯山)이 섬처럼 솟아 있다.
조선 선조(宣祖) 때의 일이다. 이 덕봉산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중에 밤마다 스스로 소리내며 우는 대가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웃 맹방리(孟芳里)에 사는 홍견(洪堅)이란 사람은 자명죽을 얻기 위하여 덕봉산 신령에게 제사를 올렸다. 제를 올리고 기원을 한 지 7일째가 되는 날 밤 산신령이 나타나 자명죽(自鳴竹)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가 자명죽을 찾아 살펴보니 대 한 포기에 줄기 5개가 자라나 있었으며, 마디마디가 총총하고 고르게 자라 있었다. 홍견은 이것을 끊어서 화살을 만들었다.
홍견은 어릴 때부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며 담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1527년 선조 5년에 별시(別試)가 있었는데, 이 화살을 사용해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이 화살을 가보(家寶)로 간직하였다. 그 후 9년 만인 선조 22년에는 그의 동생인 홍확(洪確) 역시 이 화살을 사용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 홍씨 가문은 이 자명죽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또 세상 사람들은 홍견이 급제한 후 9년마다 그의 아들·동생이 무과에 급제되었다 하여 홍씨는 구구(九九)의 수로 번성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자명죽을 얻어 무과에 급제한 홍견은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임진왜란을 겪으며 이순신을 도와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다. 이후 김해부사(金海府使)를 마지막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노구의 몸으로 삼척 고향 맹방리로 돌아왔다. 또 그의 둘째 동생 홍확도 무과에 급제한 후 울진 현령 및 울진포 만호의 벼슬을 지내다 노구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셋째 동생인 홍광(洪圓)은 원래 성품이 온화하고 산수를 좋아했다. 그는 벼슬에는 나가지 않고 전토(田土)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이들 형제들은 관직을 버리고 백발이 성성한 몸으로 맹방구은(孟芳舊隱)에 돌아와 서로 만나게 되었다. 젊었을 때 청운의 꿈을 안고 공명 사업을 펴 보겠다는 그러한 기백을 다시 생각하며, 서로 손등을 두드리며 형제애를 나눴다. 임진왜란이라는 대국란을 겪던 격량기에 객지에서 향수를 느끼며 고향에 돌아온 3형제의 우애는 더욱 돈독했다. 그러나 이 상봉의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서로 간에 생활의 터전을 찾아 3형제는 남북 40리를 사이에 두고 생활 근거지로 헤어지게 되었다. 홍견은 맹방리 고향집에 그대로 있고, 동생 홍확과 홍광은 북평으로 분가하여 살게 되었다. 모처럼의 상봉에서 다시 이별한 형제들은 남북 40리 중간 지점인 삼척 남양리(南陽里) 속칭 사대에 정자(亭子)를 지었다. 그리하여 매월 보름이면 서로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이 정자에 모여 그들의 뇌수 속에 아로새긴 지나온 인생 행로를 더듬으면서 형제의 우애를 해가 저물도록 나누게 되었다.
이러한 모임은 1년 열두 달 보름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수로 오십천 강물이 넘쳐흘렀다. 이들 형제는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이 정자에 모이려고 하였으나 물이 불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형은 남쪽강 언덕에, 동생들은 북쪽강 언덕에 서로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술잔을 들어 강 건너 형에게 술을 권하면 형은 잔을 직접 받을 수가 없어 스스로 술잔에 술을 부어 동생들이 권한 술로 생각하며 마셨다. 형도 동생들에게 잔을 권하면 동생들도 형과 같이 자작으로 술을 마셨다. 이들 형제는 온종일 잔을 같이 들어 권하고 마시면서 강물이 사이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형제 간의 화락(和樂)을 즐겼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 형제의 우애를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이 정자를 삼형제가 화락한 곳이라 하여 삼락정(三樂亭)이라고 불렀다. 이 삼락정은 삼척시 남양동 사대에 있었다고 하였으나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오늘날에는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모티프 분석]
홍견이 덕봉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올린 후 7일째가 되는 날 밤 산신령이 나타나 자명죽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의 구조는 영웅 모티프에 등장하는 조력자의 도움에 해당한다. 영웅 모티프가 기이한 출생, 비범한 성장, 위기의 직면, 조력자의 도움, 고난의 극복, 초인적인 활동 등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듯이 홍견은 조력자의 도움을 통해 자명죽을 얻어 과거에 급제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도와 왜구를 물리치는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영웅 서사의 구조와 관련해 살펴 보면 비범한 성장 → 어려서부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담력, 조력자의 도움 → 산신령이 나타나 자명죽을 얻어 무과에 급제, 고난의 극복 →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구를 물리침, 초인적인 활동 → 이순신을 도와 많은 전공을 세움 등과 같은 영웅 서사의 구조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이 설화는 영웅 모티프의 서사적 유형 구조와 닮았다. 그리고 삼락정을 짓고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는 이야기는 형제애 모티프에 기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홍견이 자명죽을 얻어 무과에 급제하였다는 전설은 자명죽의 신비한 영험과 홍견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도구를 얻었다 하여도 자신의 노력 없이 그냥 되는 일은 없다. 홍견은 무과(武科)에 나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뿐 아니라 담력도 길러 왔다. 그의 오랜 노력의 결과가 무과에 급제하게 한 것이다.
삼락정은 홍견·홍확·홍광 삼형제의 우애를 통해, 작은 이익을 얻고자 형제간에 시기하고 불신하는 현대인들이 경계하고 ‘본받아야 할 형제간 우애’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