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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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葛田里英陽南氏世居地 |
영어공식명칭 | GalJeon ri YeongYang Na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일종 |
세거|집성지 | 갈전리 영양남씨 세거지 -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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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남민 |
입향 시조 | 남훈 |
[정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에 있는 영양 남씨 세거지.
[개설]
영양남씨는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훈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이다.
[연원]
갈전리(葛田里)는 칡밭이라 하는데, 예부터 칡덩굴이 무성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명종 때 울진군으로부터 남훈(南訓)이 이주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영양남씨의 시조 남민은 본시 중국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년(경덕왕 14)에 봉명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풍랑을 만나 영해축산항 부근에 표착하여 신라에 귀화하였다. 경덕왕이 남씨(南氏)로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영양현을 식읍으로 내려 살게 하고 영의공(英毅公)이라는 작호를 내렸다고 한다. 후손들이 의령남씨(宜寧南氏), 고성남씨(固城南氏)로 분파되어 나갔으나 다 남민의 자손이다.
[입향 경위]
『영양남씨 세보』에 따르면, 영양남씨울진 입향조는 중랑장을 지낸 남영번으로 고려 말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이곳으로 이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삼척의 영양남씨는 목사공파 후손으로 입향조 남훈의 선친인 참봉공 남종범을 파조로 삼는다.
[현황]
1930년대 집성촌 자료인 『조선의성(朝鮮の姓)』에 따르면, 당시 갈전리영양남씨 집성촌에는 70호가 살고 있었는데, 현재 갈전리에는 영양남씨가 40호 정도 거주하고 있다. 참봉공 이하의 시제는 음력 10월 1일에 행한다. 갈전리영양남씨 배출 인물은 남식(南湜), 남석, 남재명(南載明), 남용기(南龍基) 등이 있다. 남식(南湜)은 1867년(고종 4)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을 제수 받았다. 남석은 1865년(고종 2)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다. 남재명(南載明)은 독립유공자로 백헌유고 문집이 전해진다. 남용기(南龍基)는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을 졸업한 인재로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관련 유적]
삼척 갈전리 당숲[느릅나무]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272호다. 이 나무에는 매년 왜가리가 와서 새끼를 치기 때문에 서낭당목으로 추앙받고 있어 주민들이 정월보름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금 문화재청이 당숲을 관리하기 이전, 당과 당숲은 계속해서 ‘갈전남씨’들이 관리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