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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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臨院山烽燧址 |
영어공식명칭 | Beacon Fire Station of Mt. Imwon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도현 |
현 소재지 | 임원산 봉수지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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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봉수 |
양식 | 연대+방호벽형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개설]
임원산 봉수는 임원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 역할을 한 중요 국방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소속 ‘임원산 봉화’라 하여 북으로 초곡산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에 응한다고 하였다. 이후 편찬된 각종 지지의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임원산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통천의 금란성 봉수(金幱城烽燧)에서 1거 직봉인 회양의 소산 봉수(所山烽燧)와 2거인 영덕대소산 봉수(大所山烽燧), 안동의 봉지산 봉수(烽枝山烽燧)로 연결되는 보조 봉수 역할을 한 총 38기의 간봉과 연결되어 있다. 형태와 기능면에서 해안 지역에 주로 설치된 연변 봉수라 할 수 있다.
임원에서는 이곳을 남화산 봉화대라 부르고, 봉화대에서 임원초등학교 쪽에 있는 골짜기를 봉골이라 부른다. 당시 연변 봉수는 단순한 통신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체 방어와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다.
[건립 경위]
1446년(세종 28)에는 봉수의 중요성에 비추어 각도 연변 연대의 축조 법식과 중부 봉화의 배설 제도 등이 의정부의 건의로 1447년(세종 29) 연변연대조축지식(沿邊煙臺造築之式)과 복리봉화배설지제(腹裏烽火排設之制)가 동시에 마련되어 시행됨으로써 구체화한 연변 봉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외적 침입이 자주 발생한 삼척 지역 다섯 곳에 연변연대조축지식과 복리봉화배설지제의 지침을 반영하여 연변 봉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통신 편의와 해안 방어를 위하여 임원산에 봉수를 설치하였다.
첫 축조[초축(初築)]은 고려 말~조선 전기로 보인다. 폐지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삼척 지역에 왜구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북변에 있는 여진족[만주족]이 삼척 지역까지 침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과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 기록된 삼척부사 류시회(柳時會)[1562~?]가 재임하고 있던 1626년[병인년]에 영동 지역의 봉대(烽臺)를 폐지하였다는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삼척의 봉수는 폐지되었다고 한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인조 때인 1626년(인조 4)에서 『여지도서』가 편찬된 18세기 중엽 사이로 여겨진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 일대 해발 141.1m 남화산[옛 이름은 임원산] 봉우리에 위치한다. 동쪽은 동해 연안에 접하여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며, 남쪽과 북쪽으로 가곡산 봉수와 초곡산 봉수가 육안으로 잘 보이는 위치이다.
[형태]
임원산 봉수는 연대의 형태별 구조에서 ‘연대+방호벽형’으로 볼 수 있다. 봉수대 건물지의 배치 형식 분석에 따른 분류에서 보면 방호벽 내에 연대와 건물이 있는 일곽형으로 볼 수 있다.
[현황]
현재 정상부 능선 상에 연대를 설치하고, 남쪽에는 2칸으로 된 창고지가 있다. 동쪽은 급경사여서 별도의 시설이 없는 자연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남·서·북쪽의 3면으로 방어 시설인 방호벽이 연대와 창고지를 둘렀다. 연대의 서쪽 방호벽 외측 또한 경사가 급하다.
연대는 평면 원형의 단봉이며, 토석혼축으로 축조되었다. 하단부는 기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상부 연소실을 설치한 곳으로 추정되는 부분에는 국립지리원이 삼각점을 설치해서 현재 함몰되어 있다. 동서 방향 9.2m, 남북 방향 7.2m, 둘레 27.0m, 높이 약 2.4m이다.
연대 남서쪽에는 건물지가 위치한다. 중간은 폭 62㎝로 구획하여 2칸으로 사용하고, 출입구는 창고지 동쪽인 봉수대쪽으로 폭 70㎝ 정도의 중간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크기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5.9m, 북동~남서 방향으로 4.1m이다. 높이는 1.2m 정도이다. 양산위천 봉수와 인천축곶 봉수에서도 이러한 창고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방호벽은 너비 2m, 둘레 50m, 높이 85~90㎝ 정도 규모로 잔존하고 있다. 동쪽 해안이 절벽이어서 반원형을 띠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소규모이며, 흙으로 쌓은 토축이다. 연변 봉수 가운데 방호벽이 있는 대부분의 봉수는 석축이고 인천의 축곶 봉수는 토석혼축으로 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은 숫돌과 옹기편·기와편으로, 조선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임원산 봉수에서 축대가 6단 정도인 창고지가 발견되었다. 반원형인 연대 방호벽형의 형태가 대체로 잘 남아 있는 등 전체 형태 파악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에서 동해안 지역의 연변 봉수 연구 및 분석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