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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96
한자 光泰里古城
영어공식명칭 Gwangtaeri Castle
이칭/별칭 광태리성지,부남고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224
시대 조선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
현 소재지 광태리 고성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224 지도보기
성격
양식 토성
크기(높이,길이,둘레) 약 600m[둘레]
소유자 사유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에 있는 성터.

[개설]

광태리 고성은 일명 ‘부남고성(府南古城)’이라고도 불린다. 신평마을의 구릉 산지 해발 65~15m에 입지하고 있으며, 근덕면 지역 최대 하천인 마읍천(麻邑川)의 강안에 인접해 있다. 이 성의 내력과 관련하여 김종언(金宗彦)『척주지(陟州誌)』, 심의승(沈宜升)의 『삼척군지(三陟郡誌)』, 최만희(崔晩熙)『진주지(眞珠誌)』 등에 단편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군(郡)의 남쪽 교가역 서쪽 신평마을에 고성(古城)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 둘레가 약 70칸(間)이다”라고 하였다. 이들 문헌 기록을 통하여 오래전부터 고성의 존재성이 알려져 왔지만 실제 성터의 위치가 알려지지 않다가 2001년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로 정확하게 확인되었다.

이 성지(城址)는 근덕면 소재지인 교가리의 남쪽 마읍천 유역과 바로 인접한 해발 65m 안팎의 야트막한 서쪽 야산지대에 입지하고 있다. 마읍천 건너편이 바로 부남마을[부남리(府南里)]이기 때문에 예전에 ‘부남고성’으로도 불리어 왔다.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성지는 근대까지 성의 출입구 가까이 배가 들어와 곡물 등 물자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과 지리 위치에 따른 입지 여건, 출토 유물 양상 등을 근거로 볼 때 이 성은 각종 곡물을 보관하던 조선시대 삼척부의 창성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224 일원의 신평(新坪)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광태리 고성은 1개의 소곡지(小谷地)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형태의 토성(土城)이다. 북쪽과 서쪽 능선 상에 토축부가 양호한 상태로 일부 남아 있고, 북동쪽은 마읍천 방향으로 입구가 터져 있는 상태이다. 남측과 북측의 외측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동쪽에는 북동류하는 마읍천에 의한 하식애(河蝕崖)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성내 곡지는 현재 밭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완경사로, 기와편과 백자편이 산재해 있다. 수원(水源)도 있다. 서쪽 능선 상에서도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질그릇편 다수가 수습된 바 있으며, 성문지(城門址)가 관찰된다. 성의 북벽 상부 폭은 약 2.0~2.5m, 높이는 약 2m, 전체 둘레는 약 600m이다.

[의의와 평가]

일명 ‘부남고성(府南古城)’으로도 불리는 광태리 고성은 조선시대 삼척 지역의 창성(倉城)으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지역의 관방 유적 성격 이해에 의미가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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