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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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府使李奎憲興學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현 |
현 소재지 | 부사 이규헌 흥학비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 앞의 옛 동헌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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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공덕비 |
관련 인물 | 이규헌 |
[정의]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삼척부사 이규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개설]
부사 이규헌은 1835년(헌종 원년)부터 1839년(헌종 5)까지 5년 동안 삼척부사로 재직하였다. 1836년[병신년]과 1837년[정유년]의 큰 흉년에 유민(流民)을 구활(救活)한 이규헌은 봉록(俸祿)을 덜어내고, 부민(富民)들에게서 많은 돈을 마련하여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또 백성들의 세 부담을 줄여 주고 요역 감면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양사보(養士保)를 창설하고 거접(居接)의 자금으로 활용하여 유학 교육을 장려하였다. 만년제(萬年提)를 쌓았으며, 봉황대에 석인상 3개를 세워 상충하는 기운을 다스렸다. 죽서루 아래에는 방수제(防水提)를 쌓았다. 빙월루(氷月樓), 원풍루(願豊樓),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 등 3개의 현판을 써 새기고는 세 누각에 각각 걸었다. 운흥사(雲興寺)에 화재가 나자 중건할 수 있도록 쌀과 돈을 지원하여 중건한 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하였으며, 흑악사·공양왕릉·효자 및 열녀 비각을 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839년[기해년] 12월에 능주목사로 옮겨가게 되자 그를 기리기 위하여 역둔리에는 선정비를 세웠으며, 부내면에는 흥학비가 전해지고 있다.
[건립 경위]
1835년(헌종 원년)부터 1839년(헌종 5)까지 5년 동안 삼척부사로 재직한 이규헌의 흥학(興學)에 대한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위치]
부사 이규헌 흥학비는 삼척시 성내동죽서루 앞의 옛 동헌 터에 있다.
[형태]
부사 이규헌 흥학비는 뚜껑돌[개석(蓋石)] 없이 비신만 있다. 비의 윗부분은 둥글게 처리한 원수형(圓首形)이고, 비는 사각형[방형(方形)]의 비신 받침에 세워져 있다.
[금석문]
부사이공규헌흥학비(府使李公奎憲興學碑)
흥학양사(興學養士)
천재일시(千載一時)
오계묘육월 일개각(五癸卯六月 日改刻)
[현황]
부사 이규헌 흥학비(府使 李奎憲興學碑)는 삼척시 성내동죽서루 앞의 옛 동헌 터에 이 지역의 다른 공덕비와 함께 있는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삼척 지역에 남아 있는 흥학비로는 부사 이규헌 흥학비와 함께 영장 윤명근 흥학비(營將尹明根興學碑), 부사 김우현 흥학비(府使金佑鉉興學碑)가 있다. 이를 통하여 삼척에 부임한 부사나 영장들이 향교 지원 등 학문 진흥에 노력하였음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