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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 석조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54
한자 胎封石造物
이칭/별칭 성동리 태봉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2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손 시기/일시 일제 강점기 - 태봉 석조물 훼손
개축|증축 시기/일시 1836년(헌종 2) - 익종태실이 태봉으로 가봉됨이 결정
이전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태봉 석조물 현재의 위치로 이전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04월 09일연표보기 - 태봉 석조물 포천시 향토유적 제30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9월연표보기 - 태봉 석조물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4월연표보기 - 태봉 석조물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종료
조성|건립 시기/일시 1809년(순조 9) 12월 12일연표보기 - 태봉 석조물 조성
현 소재지 태봉 석조물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2리지도보기
원소재지 태봉 석조물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2리 향교골 태봉산 정상
성격 태봉
관련 인물 익종(翼宗)|순조(純祖)|순원 왕후(純元王后)|홍명호(洪明浩)
크기(높이 탑신석(82㎝) 태실(130㎝) 귀부(85㎝) 연엽주석(96㎝) 하마비(140㎝)
관리자 포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포천시 향토 유적 제30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2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익종의 태봉.

[개설]

태봉(胎封)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지석을 묻는 절차를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라고 한다.

익종(翼宗)[1809~1830]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이며, 제24대 헌종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영[昊]이고, 자는 덕인(德寅)이며, 호는 경헌(敬軒)이다. 어머니는 순원 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김조순(金祖淳)의 딸이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령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과 가례(嘉禮)를 올려 1827년 헌종을 얻었다. 같은 해 부왕인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면서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지 않은 인물을 중심으로 현재(賢才)를 널리 등용하여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고 왕권 강화에 노력하였지만, 4년 후에 죽었다. 헌종이 즉위한 뒤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묘호(廟號)는 문호(文祜)이고, 시호는 효명(孝明)이며, 능은 양주에 있는 수릉(綏陵)이다.

[건립 경위]

1809년(순조 9) 8월 9일에 태어난 원자의 태(胎)가 9월 3일에 지금의 포천시 영중면 성동 2리 향교골에 소재한 태봉산(胎封山)[190m], 즉 당시의 영평현(永平縣) 상면리(上面里) 고향교동(古鄕校洞) 유좌지원(酉坐之原)’의 길지였던 이 봉우리로 낙점되었다. 이후 11월 20일에 시역(始役)하여 장태 길일인 12월 12일에 안태사(安胎使)로 임명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홍명호(洪明浩)의 책임 아래 필역(畢役)한 내용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가경십사년십이월이십일 영평현 원자 아기씨 장태의궤(嘉慶十四年十二月二十日 永平縣 元子阿只氏藏胎儀軌)』[규(奎) 13969]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후 1836년(헌종 2)에 태실(胎室)이 태봉(胎封)으로 가봉(加封)되어 중동석(中童石), 개첨석(盖詹石), 횡죽석(橫竹石), 사방석(四方石), 연엽 주석(蓮葉柱石), 면상석(面裳石), 면전석(面磌石), 우상석(隅裳石), 우전석(隅磌石), 표석(標石), 귀롱 대석(龜籠臺石), 연엽 동자석(蓮葉童子石), 금표석(禁標石) 등의 석물이 조배(造排) 길일인 3월 12일에 추가로 시설되었음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의 『도광십육년병신삼월 일 경기영평현익종대왕태실가봉석란간조배의궤(嘉道光十六年丙申三月 日 京畿永平縣翼宗大王胎室加封石欄干造排儀軌)』[규(奎) 13970]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치]

포천시 포천읍에서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14㎞ 정도 가면 영중면의 38휴게소를 지나서 성동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이동면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00m 정도 직진하면 도로 오른쪽의 영평천 변에 있는 소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현재 남아 있는 화강암 재질의 태봉 석조물은 ‘자(子)’ 자와 ‘묘(卯)’ 자가 각각 명문되어 있는 연엽 주석[높이 100㎝] 2기, 오석으로 된 태봉 표석을 받치고 있던 귀롱 대석[200×90㎝) 1기, 옹석[높이 60㎝, 둘레 270㎝) 1기, 옹석 위에 올려져 있는 개첨석 1기, 중동석[길이 84㎝, 현재 52㎝] 1기, 하마비[높이 145㎝] 1기, 연엽 동자석[높이 56㎝] 1기, 면상석 2기, 우전석 3기, 우상석 8기, 황죽석 1기, 면전석 3기, 면상석 2기 등이 있다.

[현황]

익종의 태봉은 100여 년 동안 엄격하게 보호받으며 전승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문화재 조사라는 명분으로 태항(胎缸)을 도굴하였고, 이후 석조물이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 6·25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석조물의 밀반출이 진행되었는데, 육군 제5군단장이 남아 있던 석조물을 인수 보관하였다. 1977년에 현재의 위치에 소공원이 조성되면서 이전하여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봉 석조물성동리 태봉이라고도 하는데, 포천시에 소재한 대표적인 태봉 관련 유적이다. 조선 후기의 태봉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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