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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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敏和 |
영어공식명칭 | Gu Minhwa |
이칭/별칭 | 능성위(綾城尉),눌경(訥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채용 |
[정의]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하였던 조선 후기 영조의 부마.
[개설]
구민화와 화길옹주가 거주하던 남양주궁집이 남양주시 평내로 9[평내동 427-5]에 남아 있다.
[가계]
구민화(具敏和)[1754~1800]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눌경(訥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판돈녕부사 구성임(具聖任)이고, 할아버지는 병조판서 구선행(具善行)이다. 아버지는 통제사 구현겸(具顯謙)이고, 어머니는 정동상(鄭仝祥)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부인은 영조(英祖)의 딸 화길옹주(和吉翁主)이며, 아들은 구명희(具命喜)·구영희(具令喜)·구염희(具念喜)이다. 사위는 김이초(金履初)·윤영명(尹永明)이다.
[활동 사항]
구민화는 1754년(영조 30)에 태어났다. 1764년 12월 화길옹주의 배필로 정해져 능성위(綾城尉) 순의대부(順義大夫)에 책봉되었고 1765년 10월 13일 가례를 올렸다. 1766년 종2품 자의대부(資義大夫)에 올랐다. 구민화와 화길옹주는 영조가 지금의 남양주시 평내동에 지어 하사한 궁집에서 거주하였으나, 화길옹주는 혼인한 지 7년 만인 1772년 사망하였다.
구민화는 1779년(정조 3) 7월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지만, 8월 정조의 여주 행차를 배종(陪從)[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따라감]하였다가 종이 선전관을 구타하는 바람에 책임을 물어 전라도 김제로 유배되었다. 1779년 10월 1일 방면되었고, 1780년 종1품 명덕대부(明德大夫)를 거쳐 1784년 정1품 수록대부(綏祿大夫)에 올랐다. 이후 구민화는 대청사행(對淸使行)의 정사(正使)로서 청나라를 세 번이나 다녀왔으며, 정조(正祖) 사망 후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직후인 1800년(순조 즉위년) 12월 4일 사망하였다.
[묘소]
구민화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 있었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근린공원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