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내동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14
한자 「坪內洞 說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장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5월 1일 - 「평내동 설화」 남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남양주시 역사 문화 길잡이 우리 고장 남양주』 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11월 30일 - 「평내동 설화」 박이정에서 발행한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 수록
관련 지명 평내동 -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지도보기
관련 지명 궁평마을 -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지도보기
성격 전설|민담
주요 등장 인물 단종|세조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인물담|풍수|왕위 쟁탈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 지명, 지형지물 등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평내동 설화」는 구비문학 채록 자료 중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 채록된 자료를 정리한 이야기이다. 평내동과 관련하여 주로 지명 유래담과 지형지물 유래담 등이 전하여진다.

[채록/수집 상황]

「평내동 설화」는 2000년 5월 1일 남양주문화원에서 발행한 『남양주시 역사 문화 길잡이 우리 고장 남양주』와 2001년 11월 30일 박이정에서 발행한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남양주시 역사 문화 길잡이 우리 고장 남양주』 설화 자료는 조사자와 제보자가 불분명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만 수록되어 있다. 『경기북부구전자료집』 설화 자료를 위하여서는 조희웅, 박인희, 조재현이 조사에 참가하였고, 지역 주민 이규택이 설화를 제보하였다.

[내용]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는 「의안대군 묘자리」, 「궁평동」과 같이 의안대군(義安大君)[1348~1408]의 묘와 관련된 설화가 채록되어 있다. 또한 궁평동[평내동 궁평마을]에 대한 유래도 함께 수록되었다. 궁평동에 의안대군 사후에 궁이 지어졌고, ‘궁말’로 부르던 것이 ‘궁평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빈대절터」, 「난골」과 같은 지명 유래담도 같이 채록되었다. 「빈대절터」는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빈대절터 설화’의 일종이다. 다만 평내동에서 채록된 「빈대절터」는 빈대가 많아서 승려가 불을 지르고 떠났다는 짤막한 이야기만 수록되었다. 「난골」의 경우 따로 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에 난이 많아 ‘난골’이라 불렀다는 간단한 이야기이다.

『남양주시 역사 문화 길잡이 우리 고장 남양주』에는 구전설화 항목이 따로 있으나, 평내동의 자료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다만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 수록된 의안대군 사망 이후 지어진 궁과 관련된 지명 유래만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모티프 분석]

『남양주시 역사 문화 길잡이 우리 고장 남양주』와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 수록된 평내동 설화는 지명과 풍수 관련된 모티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채록된 자료가 대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제보한 것이 있어 모티프 분석이 어렵다. 다만 「의안대군 묘자리」의 경우는 단종(端宗)[1441~1457]과 세조(世祖)[1417~1468]의 왕위 쟁탈에 대한 모티프가 나타나며, 일족을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조카의 자리를 빼앗은 세조의 잔혹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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