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의 우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0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빛나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623년 - 「오성과 한음의 우정」 이항복의 『백사집』3에 이덕형 묘비명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10월 12일 - 「오성과 한음의 우정」 한음 이덕형 별서터 은행나무 2본 경기도 남양주 보호수 지정
관련 지명 한음 이덕형 별서터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송골길 67[송촌리 635-1]지도보기
성격 역사 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이항복|이덕형
모티프 유형 오성한음의 우정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이항복이덕형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

[개설]

「오성과 한음의 우정」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전하여 내려오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덕형의 호가 한음인 것과 달리 ‘오성(鰲城)’은 이항복의 호가 아니라 왕에게 받은 봉호인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오성’은 이항복의 본관인 경주의 별칭]에서 따온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있는 한음 이덕형 별서터에는 이덕형이항복을 그리워하며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남아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오성 이항복한음 이덕형의 우정 이야기가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오성과 한음의 우정」과 관련한 이야기는 『백사집(白沙集)』3권 ‘묘지(墓誌)’에 일부 수록되어 있다. 이항복이덕형의 죽음을 추모하며 직접 쓴 묘비문이 실려 있다.

[내용]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명신(名臣)인 한음 이덕형오성 이항복은 서로 막역한 친구였다. 이덕형이항복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두 사람은 나이를 잊고 사귀었다.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은 수많은 일화를 낳았다. 이덕형은 37세의 나이에 재상에 올라 세 번이나 영의정을 역임하였지만 광해군(光海君)[1575~1641]의 정치에 이항복과 함께 반대하다 삭탈관직되어 낙향하게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는 이덕형의 별서터가 남아 있다. 이덕형은 별서터에서 칩거하고 있다가 병이 도져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항복이덕형의 부음을 듣고 찾아가 직접 장례를 치렀으며, 이덕형의 묘비문 또한 직접 지어 이덕형의 지식과 인품, 사람됨과 높은 인격을 추모하였다고 한다. 묘비문에는 두 사람의 오랜 우정과 벗의 죽음으로 이항복이 느낀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이덕형의 생애의 마지막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한음 이덕형 별서터에는 이덕형이 1605년에 이항복을 그리워하며 직접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모티프 분석]

「오성과 한음의 우정」은 경기도 남양주시를 무대로 이항복이덕형에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나 두 사람의 우정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전국에서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이항복이덕형 각각의 이야기가 전하여지기도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가 전하여지기도 하는데, 특히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있는 한음 이덕형 별서터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오성과 한음의 우정」은 생애 마지막까지 나누었던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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