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39
이칭/별칭 쇠꼬리마을,소쿠리마을,능안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520년 이후 - 평구마을 김식 안장 이후 청풍 김씨 세거
성격 자연 마을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평구마을은 조선 전기의 사림파 김식(金湜)[1482~1520]과 청풍 김씨(淸風 金氏) 후손들이 세거하던 곳으로, 조선 시대 역로 중 평구역이 있었다.

[명칭 유래]

평구마을의 ‘평구(平丘)’는 평평한 언덕이 박의 덩쿨처럼 흩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평구마을’의 명칭이 조선 시대의 역로 중 한양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던 평해로에서 가장 큰 역이었던 평구역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평구마을은 ‘쇠꼬리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의 모양이 소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소쿠리마을’이라고도 불렸는데, 마을이 마치 삼태기 안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마을의 동쪽으로 능이 생기려다 말았다고 하여 ‘능안’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평구마을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청풍 김씨김식, 김육(金堉)[1580~1658], 김좌명(金佐明)[1616~1671]의 신도비 3기가 있어 삼패(三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평구마을청풍 김씨가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풍 김씨의 입향조인 김식평구마을에 대해 한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김식은 조광조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현량과에 장원한 김식은 곧바로 성균관사성, 홍문관 직제학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기묘사화 이후 절도에 안치하는 처벌을 받게 되어 결국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자결하였다. 김식의 시신은 본래 아버지 김숙필(金叔弼)의 묘가 있는 경상북도 선산군[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고아면 지역]에 안장할 계획이었으나, 조정의 배려로 서울로 옮겨지게 되었다. 인천을 거쳐 서울로 이동하는 도중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김식의 명정(銘旌)이 지금 묘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 행렬을 같이했던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주변 지역을 살폈는데, 그 일대가 마치 부처가 앉아 있는 형국과 같은 명당 자리였으며, 박들이 달려 있는 ‘박덩굴형’이어서 풍수지리상 자손이 번창할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에 명정이 떨어진 곳에 김식의 시신을 안장하였고, 이후 김식의 후손들은 묘소 근처에 있는 평구마을에 세거하여 이후 많은 후손과 인물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증명하듯, 평구마을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는 청풍 김씨 문의공파 묘역이 있다. 청풍 김씨 문의공파 묘역에는 문의공파의 파조이자 경기도 남양주 청풍 김씨의 입향조인 김식김식의 3세손인 김육, 김육의 아들 김좌명을 포함한 후손들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한편 평구마을은 조선 시대 역로 중 하나인 평구도의 본역 평구역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평구역은 한양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는 평해로에서 가장 큰 역이었으며, 중앙으로부터 찰방이 파견되어 역을 주재하였다. 평구마을 근처에 있는 미음나루는 조선 시대 군량미나 둔전세를 하역해 남한산성으로 운반하던 배가 정박하던 포구였으며, 경기 북부 지역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군[현 경기도 광주시]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했던 나루터였다.

[자연환경]

평구마을천마산 줄기에 있으며, 일대가 평평하다. 평평한 일대에 천마산 줄기를 따라 사방으로 자그마한 봉우리가 모여 있어, 마치 중심 줄기를 중심으로 박이 마디마다 열리는 형세라 하여 풍수지리학자들은 ‘박덩굴형’이라고 하였다.

[현황]

오늘날 평구마을에는 청풍 김씨의 후손들과 일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이 있는 행정 지명인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동의 인구수는 경기도 남양주시 행정 지역 중 가장 적은 3,905명·2,308가구에 불과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동에 일패동·이패동·삼패동이 소속되어 있음을 고려해 보면 평구마을 역시 적은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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