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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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漢俊 |
영어음역 | Ryu Hanj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 8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동현 |
성격 | 농악 명인[상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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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 82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8월 23일 |
몰년 | 1952년 2월 15일 |
본관 | 고흥 |
대표경력 | 전북농악단 상쇠 |
[정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좌도 농악의 명인.
[개설]
류한준은 전문 농악인인 전판이로부터 농악의 기예를 전수받아, 마을굿에 머물러 있던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의 ‘독우물굿’을 걸립굿, 곧 예술 농악의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다른 지역의 농악인들과 교류를 함으로써 전라좌도 농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류한준은 탁월한 기량을 지닌 상쇠로서 너울과 통솔, 쇠가락에서는 좌도 농악의 최고 명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동사항]
류한준은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서 출생하였으나, 결혼 후 금지면 옹정리로 이사하여 농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전라북도 농악단의 상쇠로 참가하여 1위에 입상하였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장 걸립을 하였고, 호남 지역 최고의 상쇠로 이름을 떨쳤다.
1951년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월곡리에 초청되어 갔다가, 밤에 굿을 쳤다는 이유로 지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1952년(호적상으로는 1958년으로 되어 있으나, 아들 류명철은 1952년이라고 했음) 사망하였다. 류한준의 부친 류선장은 의병 출신의 독립 투사로서, 1990년 대한민국건국장 애국장을 받았다.
류한준의 사망 후 농악단은 해산하였으나, 이후 진안 쪽의 김수동, 남원의 강태문, 곡성의 기창수를 중심으로 하는 농악단으로 분화,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