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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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湖書院 |
영어음역 | Yongho Seowon |
영어의미역 | Yongho Private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용호정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용 |
성격 | 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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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양식 |
건립시기/일시 | 1927년 |
정면칸수 | 정면 3칸 |
측면칸수 | 측면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개설]
용호서원(龍湖書院)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원동 향약계를 주축으로 하여 남원 유림 김종사 및 여러 유림 선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74년 서원의 시설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설립 당시 처음에는 주자영을 봉안하여 배향하였다.
[변천]
용호서원은 서원 시설로 경양사등의 사당을 건립하여 처음에는 중국의 주자(朱子)를 배향하였고, 주로 지역의 향촌 중등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후 중국의 성현 주자에서 남원의 충절 선비인 연재 송병선, 영송 김재홍, 입헌 김종가로 배향의 대상이 변하면서 주자의 영정은 현재 보관 형태로 관리되고 있다.
설립 당시 봉안되었던 주자 영정은 1555년(명종 10)에 광주(光州)에 사는 유림 선비 박광옥(朴光玉)이 명나라에 서장관 신분으로 파견되었을 때, 중국의 주자와 여대균의 영정을 들여와서 남원부 원천방의 풍천노씨 집에 보관하였다.
그러다가 1866년(고종 3) 용호사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자 영정은 1893년(고종 30) 남원 고을의 여론에 따라 남원부 성내 남원향교 관할의 양사재(養士齋) 경내의 인산영당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김종가가 1927년 용호서원을 설립하면서 시설을 확충하고 경양사와 작은 강당을 짓고서 후학을 지도하면서부터 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주자 영정은 2003년 즈음에 다시 주천면 호경리 마을로 되돌아와 보관되고 있다.
[형태]
현재 용호서원 또는 용호 정사(龍湖精舍) 내에는 솟을삼문의 대문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태의 경양사와 서재 시설인 목간당, 수성재가 자리하고 있다.
[현황]
현재 용호서원 내에 경양사라는 사당에서는 남원 유림 50여 명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향 행사를 하고 있으며, 용호서원의 유림 선비들이 건립한 용호정(龍湖亭)이 서원 건너편 계곡에 있다.
특히 용호서원의 서재로서 주자의 목판 글씨체로 만든 편액이 걸려 있는 목간당(木澗堂)과 수성재(須成齋)가 용호서원 내에 현존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암 송시열의 주련 글씨 “永棄人間事 吾道付滄洲(영기인간사 오도부창주: 영원히 인간을 버리고 나면 나의 도가 은인이 사는 곳과 부합된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용호서원 내의 경양사라는 사당에서 매년 3월 15일에 남원에서 충절을 지키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지역 사회에 덕행을 펼쳤던 연재 송병선과 영송 김재홍, 입헌 김종사를 배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호서원은 설립 당시 원동향약계에 소속된 지역 유림 선비들의 참여에 그 근간을 두고 있었다. 「원동향약」은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1572년(선조 5)에 설립하여 42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채 현재까지 존속, 계승되고 있다.
유림 선비들의 향촌 자치 규약인 남원 「원동향약」은 현재 허영욱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관련 문집으로는 1638년(인조 16)에 작성한 『향약록(鄕約錄)』과 1675년(숙종 1), 1745년(영조 21), 1780(정조 4)에 만들어진 『표창록(表彰錄)』 등 20여 권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원동향약」의 뿌리 깊은 지역 유림 선비들의 끈끈한 자치 규약의 활동은 일제강점기에 입헌 김종사 등을 주축으로 한 지역 유림 선비들에 의해 용호 서원의 설립으로 그 결실을 보았으며 이후 용호서원은 지역의 사립 중등 교육 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근현대사의 격동의 세월 속에서 전통 교육의 요람인 서원과 향교 등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이 경양사라는 사당과 작은 서재만 존속하게 되었다.
용호서원에서는 학문의 강학 활동 역시 기초 학문인 『소학』에서부터 사서삼경과 『가례』, 『심경』, 『근사록』, 『사기』, 『주역』 등의 순서로 학문적인 윤리적 체계를 갖추어 강학하였으며 중국의 성현이 주자와 우리나라의 성현들을 배향하는 명맥을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