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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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영어음역 | yeollyeo |
영어의미역 | virtuous woman |
이칭/별칭 | 열부(烈婦),절부(節婦),절녀(節女),정녀(貞女)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집필자 | 이선아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절개를 지킨 아내를 일컫는 말.
[개설]
유교에서 중요시하는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열녀는 어느 시대나 다 존재하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열녀로는 삼국시대의 도미의 아내, 박제상의 아내, 평강공주 등이 있다.
고려 후기까지는 남편이 죽고 수절한 여인은 무조건 열녀로서 국왕이 정표(旌表)하였다. 당시만 해도 남편이 죽은 후 아내가 재혼하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사대부가에서 남편이 죽으면 재혼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였기 때문에 수절만으로는 열녀라고 할 수 없게 되어서, 부덕(婦德)과 현모양처로서 행실이 출중하여야 하였다.
특히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 또한 부덕을 갖춘 열녀에 속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내내 어느 고을이나 탁월한 효자와 열부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고, 따라서 열녀로 계문(啓聞: 조선시대에 지방 관리가 중앙관서에 올리는 보고)하여 정포(旌褒:정문을 세워 포상하는 것)해 달라고 청하는 장계가 고을마다 만연하였다.
이상과 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19세기만 하여도 사실은 그 고을에 열녀나 효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후세에 남기려는 사회의 풍조가 뿌리 깊은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 읍지에 실려 있는 그 고을의 열녀에 대한 기록의 내용은 전통 시대의 여성상을 잘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남원의 열녀들]
『용성지(龍城誌)』 「인물」 편 열녀조에는 고려시대에 왜구의 만행에 저항하다 자결로써 정절을 지켜 정려가 내려진 양중수(梁仲粹)의 처를 비롯하여, 남편이 죽자 평생토록 어육을 먹지 않고 절개를 지킨 호장 양전(梁田)의 처 김씨(金氏) 등의 절행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분이 미천한 종이었지만 남편이 죽자 제사를 정성껏 모시며 시부모를 섬김에 도리를 다하고, 행동거지 또한 정숙하였던 서득수(徐得水)의 처 이양(离陽)과 최억춘(崔億春)의 처 춘월(春月), 그리고 첩이면서도 부덕을 겸비하였던 오익한(吳翼漢)의 첩 일양(日陽) 등의 사적이 함께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열녀란 자신이 처한 여건 내에서 여성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스스로 절행의 모범을 몸소 실천한 여인들을 일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