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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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石器時代 |
영어음역 | sinseokgi sidae |
영어의미역 | Neolithic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이상균 |
[정의]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신석기시대는 최후의 빙하기가 끝나고 완신세가 시작되는 1만년 전부터 3000년 전경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 지구의 온난화가 서서히 시작되어 수림대의 변화와 함께 동물상에도 변화가 일어나 낙엽수림과 조엽수림의 울창한 숲에는 중·소형의 동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인도 이러한 자연 환경에 대처하여 울창한 삼림에서 나무 열매를 채집하여 가공하는 기술을 발달시켰고, 음식물을 저장하고 익히기 위해 토기도 만들었다. 그리고 정주 생활과 함께 수렵과 채집을 위한 많은 도구들을 창출하였고, 행동이 빠른 동물들을 포획하기 위한 활과 화살도 발명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바다의 자원도 이용하게 되었고, 결합 낚시 바늘과 돌작살 등 각종 어로구를 이용한 어로와 조개 채집도 성행하였다.
이와 같이 구석기시대의 생활상에 비하면 신석기시대에는 인류의 진보에 획기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빠른 시기에는 정주 생활의 흔적이 해안에 집중된 것으로 생각한다. 신석기시대 중반 이후에는 강줄기의 지류를 따라 내륙 지역으로도 많이 진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적과 유물의 분포]
남원 지역의 섬진강 중·상류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중반 이후로 추정되는 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남원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은 대곡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서는 신석기시대 만기에 해당하는 단사선문(短斜線文) 계통의 이중구연토기와 마제석착이 출토되었다. 또한 인월면 상우리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지표 수습되었다.
이 외에도 남원 지역을 흐르는 섬진강의 상류역인 임실 옥정호에서 신석기시대의 토기편이 지표 수습되었고, 주암댐 수몰 지구 내에서는 고인돌과 주거지군 조사 과정에서 신석기시대의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곡성에서는 호남고속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와 토기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문화상]
남원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은 주로 단사선문(短斜線文)·평행사선문(平行斜線文)·사격자문(斜格字文)·압날문(押捺文)·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자돌문(刺突文)·압인문(押引文)·능형문(菱形文) 등 비교적 다양하다. 시기적으로는 신석기시대 중기에서 만기에 해당한다.
남원 지역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 문물의 이동이 빈번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사람들은 강줄기 주변의 낮은 충적지에 거주하면서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격]
남원 지역을 흐르는 섬진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남해안 편년의 수가리식기과 거의 같은 중기 정도까지 올려볼 수 있다. 그러나 융기문토기의 조기와 전기의 영선동식기에 해당하는 토기는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
대산면 대곡리 유적과 인월면 상우리 상우마을에서 조사된 유물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만기에 이르는 시기로 판단된다. 섬진강 상류 쪽의 옥정호에서 수습된 능형문 계통은 남해안 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문양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이 문양은 섬진강 상류역의 한 특징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보기도 하고, 근래에 금강 유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금강식 토기와 결부시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금강식 토기와 결부시키기에는 좀더 많은 자료의 축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정식으로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지 않으나 곳곳에 유적이 산재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로써 앞으로 이 지역에서의 발굴 조사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주변 지역과의 문화 교류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