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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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山里 |
영어음역 | Chang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창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창활과 호산의 이름을 따서 창산리라 하였다. 호산마을의 경우 1917년 발행된 지명 자료에는 여시메, 즉 호산(狐山)이라고 되어 있다. 일설에는 1920년 대홍수가 발생하여 호수가 메워지고 산이 생겨 호산(湖山)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정황으로 추정해 보면 본래는 호산(狐山)이었던 것이 마을의 위치가 요천의 가장자리에 있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호산(湖山)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형성 및 변천]
호산리는 본래 남원군 금안면 호산리 지역으로 여슴에, 여시메 또는 호산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기지면의 옹정리·방촌리·호산리의 각 일부와 두동면의 임촌리 일부가 병합되어 창활과 호산의 이름을 따서 창산리라 하고, 창산리에 편입되었다.
본래 창산리에는 조선 중기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호수가 있었는데 1920년 소위 경신년 대홍수로 인하여 작은 산이 생기고 흙이 메워진 자리에 이웃 마을 주민들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가 짧아 가구 수는 적으나 주민들의 단결심이 강하고 주민 상호간에 협조가 두터워 새마을 사업으로 진입로 및 안길이 확장되었으며 1978년에는 금지면과 송동면을 잇는 금송교가 준공됨에 따라 교통이 편리해져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성리는 본래 남원군 금안면 창활리 지역으로 역원 또는 창월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기지면의 옹정리·방촌리·호산리의 각 일부와 두동면의 임촌리 일부가 병합되어 창활과 호산의 이름을 따서 창산리라 하고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그후 1919년 발생한 화재로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옹정리로 옮겨 갔다.
현재 대성리에는 흔적도 없지만 마을에서 약 1㎞ 떨어진 만물(맘몰)이라는 곳이 당시의 면소재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만물에는 약 500세대가 살았다고 하는데 세대수가 증가함에 따라 인근 넓은 들로 이주하는 사람들 중 박씨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뒤 만물이라는 곳은 없어지고 지금은 깨어진 그릇과 기왓장이 이따금씩 출토될 뿐이며 구한말까지 이곳에 역원이 있어 마을 이름을 역촌이라 불렀다. 1914년 추가양곡 보관창고가 건립되었으며, 역촌의 이름을 창활로 바꾸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법정 행정 구역으로 분리되면서 마을 이름을 다시 창산으로 고쳤는데 1972년 행정리 단위 분리 때 마을 총회에서 다시 마을 이름을 바꾸기로 하여 ‘크게 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의 대성이라 하였다.
[자연환경]
해발 고도 100m 미만의 평야 지대로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마을 뒤편에 요천(蓼川)에 흐른다.
[현황]
2007년 기준 면적은 138㏊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4세대에 156명(남자 70명, 여자 8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호산마을의 경지 면적은 50㏊로 그중 밭이 3㏊, 논이 47㏊를 차지한다. 주요 소득원은 쌀이었으나 최근 딸기 등 시설 원예 농가도 증가하고 있다.
대성마을의 경지 면적은 43㏊로 그중 밭이 4㏊, 논이 39㏊를 차지한다. 마을 앞으로 남원~곡성 간 국도 17호선이 지나 교통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