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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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正洞 |
영어음역 | Sinjeong-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와 정치(正峙)에서 한 자씩 따서 신정리(新正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신정동은 남부·중부·북부로 나누어져 있다. 남부 신정동은 넓은 가방들 일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30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부른다.
중부 신정동은 교룡산(蛟龍山)의 남쪽 기슭 최남단에 반달처럼 펼쳐진 구릉 지대에 자리한 마을로 윗정재, 가운데정재, 아랫정재로 나누어진다. 1480년경 정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여 정재[鄭峙] 또는 정재[正峙]라 부른다.
북부 신정동은 1780년경 남원양씨(南原梁氏)가 처음 정착하였으며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칠승(七承)이라 하였는데, 그보다 먼저 정씨가 정착한 중부 신정동(아랫정재)의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정재로 부르고 있다.
신정동은 본래 서봉면(棲鳳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 정치와 만덕면(萬德面) 강정(江亭) 및 이언면(伊彦面) 부동(富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기와 정치에서 이름을 따 신정리(新正里)라 하였다.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신정동이라 하고 왕정동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에 교룡산이 위치하며 축천(丑川) 일부가 남부 신정동 앞으로 흐른다.
[현황]
동쪽으로 왕정동, 서쪽으로 화정동, 남쪽으로 조산동, 북쪽으로 교룡산과 접하고 있는 농촌동이다. 2007년 기준 면적은 226.7㏊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206세대에 431명(남자 207명, 여자 22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넓은 가방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요 소득원은 쌀과 딸기, 미나리 등의 시설 원예이다. 특히 아랫정재는 채소 공급 지역으로 유명하다. 경지 면적은 밭이 28.1㏊, 논이 74.6㏊, 임야는 86.3㏊이다. 농외소득으로 남원상 제작 농가가 몇 가구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신정지구대가 있으며 종교 단체로는 신정교회가 있다. 익산~여수행 전라선 철도와 순창 방면 국도 24호선,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통과하며 2006년 남원역이 새로 이전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남부 신정동에서는 매년 칠월 백중날인 음력 7월 15일에 당산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