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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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細田里 |
영어음역 | Sej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만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세전리는 동양리와 중양리·신산리 등의 행정리를 포함하고 있다. 세전리는 선사유적지를 포함한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는 남원시의 대표적인 문화 유적 마을이다.
[명칭유래]
세전리의 원래 이름은 잠밭이다. 이밖에도 솥뫼에서 뻗어내린 낙맥의 형태가 마치 지네 같다고 하여 오공동이라 하였으며, 노거수인 비사리나무가 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축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두동방 세전(細田)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세전리의 마을 역사는 선사시대로부터 시작한다. 이 마을의 선사유적인 ‘낡은 터’는 기원전 2~3세기경부터 기원후 4~5세기경까지 수혈식 대규모 집단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 일대는 마한의 부족국가인 성읍국가의 도읍지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또한 무문토기, 적갈색 경질토기, 옹관, 방추, 어망추, 동검 등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시대에 마을에서 호당 엽전 한 잎씩만 거두어도 7량 5돈이나 되었음을 감안할 때 마을 규모가 750호에 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화에 따르면 여수·순천 등지에서 올라온 한양행 과객들이 이 마을 남쪽의 섬진강 건너편인 동산정에서 세전을 바라보고 “과연 여기가 서울이냐?”고 크게 놀랬다고 한다. 현재까지 세전리 중앙에는 ‘망덕거리’라는 관문이 있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직후 세워진 것으로 세전리가 당시 교통의 중심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두동방과 흑송방(黑松坊)을 통합하여 남원군 송동면 세전리가 되었고, 1995년에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주변으로 요천과 순자강이 동서로 놓여 전라남도와 도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금지면과 경계를 이룬 요천과 수지천인 조천 등이 마을 앞에서 만나 남원 팔경의 하나인 순강귀범의 절경을 이룬다. 세전리 마을 주변에는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만송정, 추호정, 학송루, 반룡정사, 녹항정 등의 누각이 많다. 순자강은 여름이면 은어잡이로 유명하다.
[현황]
세전리의 면적은 2.53㎢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37세대, 318명(남자 145명, 여자 17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주 소득원이 미맥 위주의 농업이었으나 근래 들어 전국 최고의 딸기 집단 재배지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다. 딸기 외에도 참외, 수박 등 과일 작물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