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341 |
---|---|
한자 | 書谷里 |
영어음역 | Seo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서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소강춘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서동마을은 글공부를 하는 방서당(房書堂)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채곡마을은 마을 앞뒤가 넓은 구릉지로 나무실이라는 풍성한 초원이 있어 ‘나물 채(菜)’자를 써서 1910년 채곡리로 불러오다가 그 후 다시 이백면 서곡리 채곡으로 칭하게 되었다. 서곡리는 서당마을과 채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서동마을은 1685년 영광유씨 시조인 유동원의 15대손 유두명이 고죽리(현 남원시 고죽동 황죽마을)에 살다가 경치가 수려한 서동마을로 옮겨와 정착하였다. 그 후 양천허씨, 경주김씨, 김해김씨 등이 정착하여 4개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면로에서 500m 지점의 속정마을은 양천허씨와 서동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을 중심으로 북쪽은 김해김씨, 남쪽은 영광유씨, 서쪽은 경주김씨가 대대로 자리 잡고 있다.
서동마을은 영광유씨가 정착한 후 학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글공부를 하는 방서당(房書堂)을 세웠다. 1730년 조선 영조 때 유씨 가문에서 성균관 진사가 배출되어 마을 이름을 서당골로 불렀으며, 백암방에 속하였다. 서동마을은 남원군 백암면 서당리 지역으로 서당골 또는 서당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채곡리, 서당리와 백암면 오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곡리라 하고 서곡리에 편입되었다. 후에 서당리는 서동(書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채곡마을 앞에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백암천과 효기천이 합류된 자연석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이 마을 형성의 근본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이 우물을 중심으로 남원, 운봉, 구례로 통하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양오씨가 이곳을 지나다 우물가에 움막을 짓고 의병들과 지나는 행인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그 후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남원의 백암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채곡(菜谷), 서당(書堂), 백파면 오촌 일부를 병합하여 서곡리라 하고 이백면에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남쪽에는 장백산이 있고 북쪽에는 매봉산이 있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현황]
2007년 기준 면적은 3.99㎢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38세대에 349명(남자 184명, 여자 16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곡리는 남원시내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국도 24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행정리로는 서동리·채곡리·문화리를 두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현재 서동마을은 총 30세대에 66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전체 면적은 2.05㎢로, 경지 면적은 밭이 0.07㎢, 논이 0.29㎢, 임야는 1.53㎢, 기타 0.16㎢이다. 채곡마을은 총 36세대에 7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전체 면적은 1.88㎢로, 경지 면적은 밭이 0.05㎢, 논이 0.27㎢, 임야는 1.36㎢, 기타 0.20㎢이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문화마을은 총 72세대에 213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전체 면적은 0.06㎢로, 전원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근 새롭게 조성된 마을이다. 자연 마을로는 서당골, 삼거리, 구석징이 등이 있다. 채곡마을에는 한국전쟁 당시 이백면 출신 전몰군경 4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8년 유족회가 세운 충혼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