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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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新里 |
영어음역 | Daesin-ri |
이칭/별칭 | 원매안,여의터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영호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대신리는 2개의 행정리, 즉 대산리(大山里)·상신리(上新里)로 나뉘어 있다. 혼불의 고장인 사매면의 면소재지로부터 남동쪽 3㎞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보절면과 광치동의 경계이다.
[명칭유래]
대신리는 원매안(元梅岸)·여의(如意)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매안은 당초 ‘구내방(丘內坊)’이었는데, 약 300년 전 공자(孔子)의 이름 ‘구(丘)’ 자를 지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손하다고 하여 바꾸기로 했다. 마을 앞 동산에 매화락지(梅花落地) 명당이 있어 매내방(梅內坊)이라 했다가, 매안방(梅岸坊)으로 바꾸었다.
또 여의터는 마을 뒤 계룡산이 용의 형상을 가지고 여의주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매면의 위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상신이라고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산마을의 원래 이름은 고산골이라 칭했으며, 1910년 합방 후 대산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남원군(南原郡) 매내면(梅內面) 대산리 지역으로 큰 산이 많다 하여 고산동 또는 대산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산리와 상신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대산과 상신의 이름을 따서 대신리라 하고 사매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가 되었다.
상신마을은 1590년경 탐진최씨·협계태씨·청주한씨가 살아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현재는 협계태씨 1호만 있다. 오히려 나중에 들어온 세종대왕의 증손인 전주이씨 이정숙의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전주이씨는 기묘사화 때인 1519년(중종 14)에 이정숙이 난을 피하여 외숙 청주한씨 직장공 한응(韓應)을 찾아오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선조대왕 때인 1593년 신설(伸雪)을 베풀어 벼슬과 문민공(文愍公) 시호(諡號)를 내려 지금의 매계서원(梅溪書院)에 형배(亨配)하였다.
대산마을은 세조 병자년 이후 진주형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1456년 형근(邢瑾)이 단종 복위 운동 때 순절한 사육신과 함께 절개를 지키다 죽게 되자, 그의 아들 형계선(邢繼善)이 난을 피해 주생면 영천리에서 이 곳 대산마을로 온 것이다. 현재 진주형씨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
[자연환경]
상신마을은 계룡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대신천이 흐르는 평지이다. 마을 앞과 뒤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대산마을은 마을 뒤가 온통 높은 산으로 되어 있으며, 마을 옆은 대신천이 흐르고 있는 구릉 지대이다.
[현황]
2006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77㎢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5세대에 155명(남자 74명, 여자 78명)이 살고 있다. 효열시설물로 형두원 효자비와 형국봉 효자각이 있다. 미맥 위주의 논농사가 주업이며, 일부 축산업과 과수업, 고구마·오디·생강 등을 생산하고 있다.
서쪽은 대율리, 북쪽은 관풍리, 남쪽은 광치동과 접해 있으며, 동쪽은 보절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시내버스 노선이 대신까지 농어촌 도로로 연결되어 1일 5회 운행하고 있으며, 전주~남원 간 4차선 국도가 서북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