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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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洞里 |
영어음역 | Dangdong Maeul |
영어의미역 | Dangdong Village |
이칭/별칭 | 당동마을,땅골,당골,당동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영호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아곡리를 관할하는 행정리.
[개설]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명칭유래]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동이라 했다. 오늘날까지 새복이재와 복성이재에는 토성 터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옛날에는 점을 쳐서 전쟁을 했는데, 이곳에서 점을 쳤다고 하여 복성동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도 장삼이 입구 말바위에는 큰 글씨로 복성동이라고 새겨져 있다. 또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물리치고 당군(唐軍)이 머무는 동안 마을 건너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당골’이라고도 한다. 이를 후에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당골’을 그대로 옮겨 ‘당동’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통일신라 초기 당나라 사람들이 일시 거주했다고 전해오나, 실제 마을이 형성되기는 고려 명종 때인 1170~1197년 풍산유씨 등이 정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후 전주이씨·경주김씨 등 여러 성씨 들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아용부곡(阿容部曲)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아곡(阿谷), 점촌(店村), 당동 일부가 병합되어 아곡리에 편입되었다.
마을 앞에 있는 관람(關攬)이란 곳에는 병영(兵營)과 성(城)을 관장하는 관청사가 있었는데, 그 터에서는 지금도 옛 기와 조각과 사금파리가 출토된다. 마을 북쪽으로 도자기를 굽던 점촌이 있었다가 동면 자래리 연실(蓮室)로 옮겨갔다.
[자연환경]
서리봉에서 흘러내린 골짜기 물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깊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500m에 이르는 지역으로, 풍수적으로 와우형(臥牛形)이다.
[현황]
2006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61.5㏊로, 아영면 전체의 4.5%를 차지하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23세대, 38명(남자 18명, 여자 20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작이 주 산업인데, 2000년대 들어서는 고랭지 채소와 고추·밤·감 등도 생산하고 있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으며, 주요 지명으로는 지리산 휴게소·새목이재·복성이재·장삼이 등이 있다. 당동리 서쪽은 장수군, 남쪽은 아영면 봉대리, 동쪽은 지리산 인터체인지와 각각 접해 있다.
지리산 휴게소는 1984년 6월에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개통됨과 동시에 설치되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마을 입구에 수백 년 묵은 정자나무(느티나무) 52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회관 1개, 마을공동창고 1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