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15
한자 寓敬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미라길123-3[송백리 26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5년연표보기 - 우경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0년대 - 우경재 보수
현 소재지 우경재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미라길123-3[송백리 267]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본채]|2칸[곁채]
측면 칸수 2칸[본채]|2칸[곁채]
소유자 밀양박씨 밀직부원군파 송백문중종친회
관리자 밀양박씨 밀직부원군파 송백문중종친회 우경재보존회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에 있는 밀양박씨 입향조를 기리기 위한 일제강점기 재실.

[개설]

우경재(寓敬齋)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미라에 입촌한 박영근(朴永根)[1691~1761]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6세손 초산 박정권[1846~1916]이 1915년 선산 터 아래에 건립한 재실이다. 박영근은 밀직부원군파 파조 박중미(朴中美, 朴仲美)의 둘째 아들이자 대사헌공파 파조 박해(朴晐)의 후손이다. 또한 박해의 셋째 손자 박사조(朴嗣祖)의 8세손으로 숙종 때 청도군 풍각에서 송백리 미라마을로 이거하였다. 이보다 앞서 박해의 다섯째 손자 박순조(朴順祖)의 8세손 박신[1616~1670]이 현종 때 경상북도 영천에서 삼랑진 용성리 칠성에 입촌하였고, 박신의 7세손 박진화가 미라마을로 이거하였다. 미라라는 이름은 마을 골짜기에 있었다고 전하는 미륵사(彌勒寺)라는 사명(寺名)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미리(美里) 또는 미라(美羅)로 불렸다.

우경재는 박영근이 송백리에 처음 터전을 마련한 내력을 기리고 봄가을로 조상의 분묘를 돌보기 위하여 지었다. 참봉 박정권의 요청으로 김유(金鍒)가 1916년 1월 재실 이름을 우경재로 지었고, 명명 의미는 기문에서 자세히 밝혀 놓았다. ‘밀직부원군파 파조인 박중미가 추구한 학문의 종지(宗旨)는 주일무적하고 항상 깨어 있어 어둡지 않은 경(敬)에 있었으니, 입향조가 처음 전거한 이곳의 자손들은 파조를 공경하면서 하는 일마다 공경하고 언행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관하면 창성한 박씨 가문이 더욱 무궁창성할 것’이라 강조하였다. 정문 이름은 ‘이척문(履惕門)’이다. 재실 내벽에는 해강 김규진 글씨의 ‘寓敬齋(우경재)’ 편액, 최중환의 우경재 상량문[1915], 김유의 기문[1916]과 손용헌의 기문[1918], 지역 인사들의 시판 등이 걸려 있다.

[위치]

우경재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267번지에 있다. 미라복지회관을 지나 좌측 두 번째 골목길을 따라 약 200m 올라가면 왼쪽 길가 안쪽에 우경재가 나온다.

[변천]

우경재는 1915년 건립된 뒤 1970년대에 지붕 기와를 전면 해체하고 현대식 기와로 교체하면서 이전의 웅장한 용마루와 치미가 사라졌다.

[형태]

우경재는 팔작지붕 목조건물의 본채와 곁채가 ‘⌐’ 형태로 붙어 있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곁채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웅장한 외삼문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우경재는 밀양박씨 밀직부원군파 송백문중종친회 우경재보존회 유사가 수시로 관리하고 있어 건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우경재를 통하여 경상남도 밀양 향촌 사회 형성과 밀양박씨 문중의 지역 내 세력 확장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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