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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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打毬- |
영어공식명칭 | A Game of Hitting the Ball with a Stick |
이칭/별칭 | 장치기,격구(擊毬)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태문 |
[정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나무 공채로 공을 쳐서 상대편의 문을 넘기는 민속놀이.
[개설]
타구놀이는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여 공을 쳐서 상대편 문을 넘기는 놀이인데, 이를테면 오늘날의 필드하키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방식이다. 장치기, 격구(擊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타구놀이가 주로 겨울철 농한기에 펼쳐지는 남성의 놀이이다. 대개 10여 명의 사람이 편을 나누어 마을의 논바닥이나 산기슭의 넓은 잔디밭 또는 얼음판 위에서 끝을 구부린 공채로 공을 쳐서 누가 상대방의 문[골]에 공을 많이 넣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서로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므로 나태하기 쉬운 농한기에 마을 아이들이나 청년들의 체력 단련과 승부 근성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연원]
타구놀이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신라로 전래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놀이인 말 위에서 하는 ‘기마격구(騎馬擊毬)’가 걷거나 뛰는 놀이로 변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밀양에서는 무안면에 살던 정성용(鄭聖用)이 어릴 적 자신이 놀았던 놀이를 1969년부터 여러 어른의 증언과 회상을 더듬어 정리한 뒤 1970년 12월 3일 밀양문화원 무안분원 발족 때 ‘타구놀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것이 최초이다. 이후 밀성종합고등학교[현재의 밀성고등학교]에서 이를 전수하여 1972년 대전에서 개최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경상남도 대표로 학생 200명이 참가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타구놀이의 도구는 공과 공채가 필요하다. 공채는 뽕나무로 만든 120~150㎝ 정도 막대기이고, 공은 솜 또는 새끼를 뭉치거나, 소나무 마디 부분을 둥글게 깎아 가죽과 헝겊으로 감아 만든다. 공에는 식별을 쉽게 하고자 꼬리를 달았다. 타구놀이는 마을의 논바닥이나 넓은 공터, 산기슭 잔디밭, 얼음판 등에서 주로 행하여졌다.
[놀이 방법]
오늘날의 축구장처럼 중앙선이 있고 사방의 구획을 정하고 양편이 자신의 문을 세운 뒤 중앙선 가운데서 놀이를 시작한다. 시작하는 방법으로 중앙선에 파 놓은 얕은 구덩이의 공을 양편이 동시에 치는 ‘아랫장’, 제삼자가 위로 던진 공이 떨어진 순간 치는 ‘웃장’, 이긴 편 사람이 위로 던진 공을 같이 한 바퀴 돈 후 떨어진 공을 치는 ‘소래기’ 등이 있다. 공채로 공을 쳐서 상대편 문에 많이 넣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공을 몰 때는 “을를를”이라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경기에서 이기면 “나헤 나헤!”라고 함성을 지른다. 이 밖에 상대의 공채를 쳐서 부러뜨리는 ‘공채싸움’이나 ‘공채넘기’, ‘공채돌리기’, ‘공넘기’ 등의 놀이도 함께 행하여졌다.
[현황]
타구놀이는 지금은 전승되지 않고 있다. 다만 오늘날에는 형태가 다르지만 게이트볼이나 파크골프가 밀양 지역 장년층과 노년층에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