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363
한자 密陽劍舞
영어공식명칭 Miryang Sword Dance
이칭/별칭 밀양이검무,밀양쌍검무,밀양운심검무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태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개시 시기/일시 18세기 - 밀양검무 개시
재현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 밀양검무 김은희가 복원·재현
재현 시기/일시 1992년 - 밀양검무 국립국악원 주최 제139회 무형문화재 정기공연 ‘김은희 전통춤판’에서 재현
관련 행사 시기/일시 2005년 - 밀양검무 정기 공연 개시
관련 행사 시기/일시 2006년 - 밀양검무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정부 공식 행사로 프랑스 파리 공연
성격 전통춤

[정의]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전통 칼춤.

[개설]

밀양이검무, 밀양쌍검무, 밀양운심검무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밀양검무(密陽劍舞)는 응천교방(凝川嬌坊)에서 이어 오던 칼춤이다. 응천은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옛 이름이다. 밀양검무의 춤사위는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밀양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다소 전투적이고 기예적이어서 남성적 전투성과 여성적 유희성이 가미되었다고 평가된다. 지금의 검무는 특히 18세기에 활동한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의 쌍검무를 복원한 것인데, 18세기 중엽 영조 때 춤으로 유명하였던 운심은 특히 검무에서 최고였다고 전하여진다.

[연원]

밀양검무는 18세기 응천교방에서 비롯되었다. 기생 운심은 응천교방에 입교한 뒤 스스로 검무를 배우고 창작하며 연마하여, 두 개의 날카로운 칼을 양손에 사뿐히 쥐고 여러 춤사위를 펼치는 검무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운심의 제자들이 추는 검무를 직접 본 감상을 『검무기(劍舞記)』로 남긴 박제가(朴齊家)는 자신의 『정유각집(貞蕤閣集)』에서 18세기 말 관서 지역에서 검무를 추는 기생은 대체로 운심의 제자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밀양검무는 밀양예기권번(密陽藝妓券番)에서 이어 오다 권번의 소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1987년 박동영[밀양백중놀이 기능보유자]이 박금슬과 이매방에게 사사받은 무용가 김은희에게 복원을 제안하면서 밀양검무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김은희는 박제가의 글과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쌍검보(雙劍譜)」를 참고하고 밀양 권번의 마지막 기생인 정금수의 고증까지 받아 밀양검무를 복원하였다. 밀양검무가 전국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때는 1992년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제139회 무형문화재 정기공연 ‘김은희 전통춤판’에서이다. 이후, 2005년부터 밀양에서 정기 공연을 하였고,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정부 공식 행사로 프랑스 파리에서도 공연하는 등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에는 일본 NHK 방송 「일본과 조선반도 2000년」에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춤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도구는 긴 장검이다. 춤추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 길이는 68㎝이며, 50㎝의 칼날 부분과 18㎝의 자루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날은 백동 재질로 약간 굽어 있고, 자루는 자주색 실이 감긴 나무로 되어 있으며, 52㎝의 칼집은 자주색 옻칠을 한 나무로 되어 있다. 무용수의 복식은 치마와 저고리, 쾌자와 전대, 가채와 전립, 한삼 등이며, 신윤복의 「쌍검대무」에 나오는 옷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반주 음악은 남도제 대[竹]풍류인데, 삼현육각의 반주로 본영산, 염불도드리, 타령, 자진타령, 굿거리, 군악, 긴염불 순으로 진행된다. 주로 밀양청소년수련관 등 넓은 공간에서 공연된다.

[놀이 방법]

밀양검무는 크게 한삼춤, 맨손춤, 칼춤으로 구성된다. 먼저 한삼춤은 본영산장단에 맞추어 관객에게 인사하고 일어나 한삼을 머리 위로 뿌린 후 마주 보며, 염불도드리장단에는 한삼을 뿌리는 일 없이 발동작 위주로 춤을 춘다. 그리고 타령장단에는 앞사위, 뒷사위, 머리사위 등 한삼사위로 춤을 추고 나서, 한삼을 벗어 던지고 서로 만나 상대어름사위를 한다. 맨손춤은 자진타령장단에 맨손으로 헛손질하는 사위를 한 뒤 칼 주변을 돌다가 칼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남도굿거리장단에는 계속 앉아 팔을 벌렸다가 몸을 숙이고 다시 일으키며 팔을 벌리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칼을 잡을 듯 말 듯 어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마지막의 칼춤은 가장 빠른 군악장단에 맞추어 본격적인 검무를 시작한다. 검을 공중에 던지고, 칼을 앞으로 내거나 찌르며, 몸을 숙여서 추거나 서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대무(對舞), 손을 허리에 둔 채 이마를 맞대어 아래위로 날아오르며 도는 연풍대 등을 펼친다. 끝에는 빠르게 칼돌림사위를 하다 군악장단이 끝남과 동시에 칼을 던진다. 이후 느린 염불도드리장단과 함께 숨을 고르며 제자리로 돌아와 마주 보고 예를 갖추어 절하면서 끝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운심의 무덤은 운심이 태어난 마을인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신안마을 뒷산 꿀벵이바위 위 야트막한 곳에 있다. 봉분은 2006년 극심한 장마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선 최고 검무의 명인 운심”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음력 8월 1일에 운심의 무덤을 벌초하면 노총각은 결혼하고 아이를 원하는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고 하여 오늘날에도 벌초를 하려고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3년부터 마을 사람들과 밀양검무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음력 9월 9일에 제세를 올릴 때 밀양검무를 추며 운심의 넋을 달래고 있다.

[현황]

밀양검무는 현재 밀양검무보존회에서 이어가고 있다. 또 운심의 고향인 신안마을은 상동면 안인리 1150-4에 벽화 골목 ‘신안운심문화마을’을 조성하여 운심과 밀양검무를 기념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도 검무영농조합을 결성하여 마을의 ‘운심검무문화센터’에서 검무를 배우는 한편, ‘운심검무축제’를 개최하여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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