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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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愛國啓蒙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1905부터 1910년까지 동안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밀양에서 전개된 실력 양성 운동.
[개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자 조선 내에서 이에 대한 저항이 각계 각층에서 일어났다. 애국계몽운동은 조선의 ‘힘’과 ‘실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교육’과 ‘식산’의 진흥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무렵 밀양 지역에서도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밀양에서의 애국계몽운동]
유림 등 밀양의 개명한 인사들은 근대적 학교를 설립하여 일제의 침탈에 대응하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1897년 사립 개창학교(開昌學校)가 설립된 이래 1908년 8월에는 내일동(內一洞)에 사립 동화학교(同化學校)가 개교하였다. 동화학교는 밀양의 항일운동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김원봉(金元鳳)[1898~1958], 윤세주(尹世冑)[1900~1942], 김소지(金小池)[1898~1978] 등이 수학한 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신명학교(新明學校), 열성학교(悅城學校), 노동야학(勞動夜學), 상덕의숙(尙德義塾), 진성학교(進成學校), 대동학교(大東學校), 일신학교(一新學校) 등의 여러 신식학교가 설립되었다.
1908년 3월에는 영남 지역의 인사들 중심으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가 설립되었는데, 교남교육회에 손경현(孫庚鉉), 손지현(孫之鉉), 박재하(朴在夏), 안병원(安炳遠) 등 밀양 지역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교남교육회는 교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한 학회로, 교육 계몽을 통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서울에 사범학교를 설립한 후 경상도에 학교를 설립·운영하기로 하였고, 『교남교육회잡지』라는 회보를 발간하여 민족 교육열을 앙양하고자 하였다.
한편 통감부 설치 이후 일제가 강제로 차관을 들이며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려고 하자 이에 저항하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밀양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호응하며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5월 19일 연계소(蓮桂所)에 모인 유림들은 5월 22일 밀양 장날을 이용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상서면(上西面), 하서면(下西面), 상남면(上南面), 하남면(下南面), 북면(北面), 천화산외면(穿火山外面), 단장면(丹場面) 등 여러 면의 사족과 유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단장면에서는 표충사(表忠寺)의 승려들까지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