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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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近代 |
영어공식명칭 | Modern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1864년부터 1945년까지 시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
[개설]
밀양군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였으나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대구부 밀양군이 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되었고,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비입지(飛入地)인 고미면이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914년 일제의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밀양군은 부내면(府內面) 등 13개 면으로 재편되었다. 1918년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었고, 193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개항기 밀양]
1876년 조선은 일본에 의하여 개항되었다. 지리적으로 내륙에 위치한 밀양은 개항장이나 개시장과 같은 주변의 도시들에 견주어 개항의 충격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구의 근대적인 문물들이 들어오면서 밀양도 조금씩 변화하였고, 마침내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 밀양역 주변으로 일본인 주택과 상점 등이 들어서면서 일본인 시가지가 조성되었고, 밀양경찰서, 밀양우편취급소[1906], 조선통감부재판소 밀양검사분국[1909] 등의 관공서를 비롯하여 은행, 학교, 상점 등 근대적 시설들도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1905년 밀양을 통과하는 철도가 개통되고 인근 지역을 잇는 도로가 정비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밀양으로 진출하는 일본인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일본인들은 토지는 물론 지역 상권, 금융 등을 잠식하여 갔다. 특히 낙동강과 밀양강 주변 비옥한 저습지·황무지 등을 개간하여서 대농장을 경영하였다.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대농장은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 등 조선총독부의 농업 정책을 배경으로 더욱더 확대되어 갔다. 조선인 농민들은 일본인 지주·회사가 경영하는 농장의 소작인으로 전락하였다.
조선이 개항한 이래 일본인의 밀양 진출과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자 밀양 지역민들의 저항도 거세어졌다. 밀양의 유림들은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였고, 1907년에는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 백운하(白雲下) 등 밀양 출신 의병들이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강점기 밀양]
강제 병합 이후에는 일합사(一合社)와 연무단(練武團) 등의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 운동을 펼쳤다. 1919년에는 밀양면을 비롯한 인근 면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치는 만세 시위가 이어졌고, 만주에서는 밀양 출신의 청년들 중심으로 의열단(義烈團)이 결성되어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1930년대에는 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계몽운동과 농민들의 소작쟁의,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등 반일적 성격의 대중운동이 크게 발달하였다. 밀양공립보통학교와 밀양농잠학교 학생들은 학교 당국과 일본인 교사에 저항하는 동맹휴학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