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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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 |
영어공식명칭 | The Joseon Dynasty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구진성 |
[정의]
1392년 조선의 건국부터 1863년까지 경상남도 밀양 지역의 역사.
[개설]
조선시대의 밀양은 행정구역상 경상도에 속한 도호부(都護府)로서 부사(府使)가 파견되는 행정 단위였고, 하위 현으로는 수산현(守山縣)과 풍각현(豊角縣)이 있었다. 신라 때는 추화군(推火郡), 밀성군(密城郡) 등으로 불렸고, 고려 때는 밀주자사(密州刺史),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 등으로 불리다가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鷄林)에 부속되는 일도 있었다. 고려 공양왕 때 ‘밀양’으로 개칭하고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조선이 들어서자 다시 밀성군으로 불렸고, 태종 이후로는 밀양도호부가 되었다.
[조선 시대의 밀양]
1392년(태조 원년) 밀성군이 되었다가, 1394년 다시 밀양부로 승격하였으며, 계성현이 영산현에 편입되었다. 1401년(태종 원년) 다시 밀성군이 되었다. 1415년(태종 15) 1,000가구 이상인 고을을 도호부로 하면서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가 되었다. 조선 세종 당시, 수산현과 풍각현을 속현(屬縣)으로 두고 있었고, 부곡(部曲)이 3개[두야보(豆也保)·이동음(伊冬音)·금음물(今音勿)], 향(鄕)이 1개[내진향(來進鄕)]였다. 속현인 수산현과 풍각현은 모두 고려 때 밀양에 귀속되었는데, 남쪽에 있는 수산현은 본래 지명이 천산부곡(穿山部曲)이었고, 서북쪽에 있는 풍각현은 본래 지명이 상화촌현(上火村縣)이었다. 풍각현은 조선 숙종 때 대구로 귀속되었다.
1479년(성종 10년), 밀양읍성이 신축되었다. 1518년(중종 13)에는 고을 내 아버지 살해 사건으로 인해 현(縣)으로 강등되어 주변 고을에 분속되었다가 4년 뒤 복구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부사 박진(朴晉)이 밀양으로 후퇴하여, 5월 28일[음력 4월 18일] 밀양 작원(鵲院)에서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1600년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여 부사가 방어사를 겸임하였는데, 1664년(현종 5)까지 60여 년 간 존폐를 거듭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 관제 개정으로 도 이하의 부·목·군·현이 폐지되고 전국이 36군으로 개편될 때 대구부 밀양군이 되었다.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개칭되었다.
밀양의 경계에는 동쪽으로는 양산군과 언양현, 남쪽으로는 김해부, 서쪽으로는 영산현, 북쪽으로는 청도군이 있었다. 진산(鎭山)은 관아 북쪽에 있는 화악산(華嶽山)이고, 성곽 남쪽에 흐르는 강은 응천(凝川)이다. 응천이 남으로 흐르다가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에 삼랑진(三浪津)이 있다.
[밀양의 교육과 문화]
교육시설로는 밀양향교와 육영재가 있고, 대표적인 서원으로는 김종직 등을 제향하는 밀양 예림서원이 있다. 이름난 사찰로는 표충사가 있고, 누정으로 밀양 영남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