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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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橃 |
영어공식명칭 | Kwon Beol |
이칭/별칭 | 중허(仲虛),충재(冲齋),훤정(萱亭),송정(松亭),충정(忠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전기 밀양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권벌(權橃)[1478~1548]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忡齋)·훤정(萱亭)·송정(松亭) 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계경(權啓經)이고, 할아버지는 부호조 권곤(權琨)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이며, 어머니는 주부 윤당(尹塘)의 딸이다. 형은 권의(權檥)이고, 동생은 권장(權檣)이다. 부인은 최세연(崔世演)의 딸 화순최씨(和順崔氏)이다.
[활동 사항]
권벌은 1478년(성종 9) 안동 도촌[현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서 태어나 봉화 닭실[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로 이주하였다.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07년(중종 2) 증광시(增廣試) 병과 2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부수찬·사간원정언·예조좌랑·홍문관부교리·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18년에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1519년 예조참판이 되었다가 삼척부사로 부임하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당하고 봉화로 낙향하였다.
권벌은 1533년 복직되어 밀양도호부사를 역임하였으며, 후에 한성부판윤에 올랐다가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병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좌참찬과 우찬성으로 재임하던 중에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고 길원군(吉原君)에 책봉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난 뒤 이기(李芑) 등에 의하여 삭훈·파직되어 구례로 유배되었다. 1547년에는 양재역(良才驛)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태천과 삭주로 이배되었고, 1548년 삭주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권벌의 저서로는 1671년(현종 12) 종손 권목(權霂)이 초간본을 간행한 5책 10권의 『충재선생문집(冲齋先生文集)』이 있다.
[묘소]
권벌의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산129에 있다.
[상훈과 추모]
권벌은 1567년(선조 즉위년)에 신원되었고, 1568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588년 삼계서원(三溪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591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