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3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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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東山里忠奴崔義男旌閭懸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달음산로 504번길 34[동산리 산8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윤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86년 - 충노 최의남 정려 내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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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12월 29일 -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장처 |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달음산로 504번길 34[동산리 산86-1] |
원소재지 |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달음산로 504번길 34[동산리 산86-1] |
성격 | 정려 현판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33㎝[가로]|73㎝[세로]|8㎝[폭]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현판.
[개설]
진주 지방 함양 박씨(咸陽朴氏) 집안의 노비 최의남(崔義男)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기려 1686년(숙종 12)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정려각 안에 있다. 정려각은 바닥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맞배지붕에 공포는 없으며 홑처마이다. 내부에는 ‘충노 효자 최의남 지비’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으며, 정려 기문이 걸려 있다. 외부에는 벽돌담을 쌓아 정려각을 보호하고 있다. 진주 동산리 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은 2011년 12월 2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가로 33㎝, 세로 73㎝, 폭 8㎝ 크기의 ‘충노 효자 최의남 지려(忠奴孝子崔義男之閭)’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고, 현판 아래에는 ‘충노 효자 최의남 지비(忠奴孝子崔義男之碑)’라고 새긴 소박한 돌비가 서 있다. 정려 현판의 글자는 6자씩 26행이다.
[특징]
『진양 속지(晋陽續誌)』에 “최의남은 동산리 박씨 집의 사노(私奴)이었다. 그의 주인이 일찍 죽고 남은 재산이 없었다. 고아만 있었으나 최의남은 주인집 제사를 받들어 향불이 끊이지 않게 하고, 또 주인집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니며 배움을 성취하게 하였다. 1686년 이런 일이 알려지자 충노로서 정려를 내리도록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박씨 문중에서 노비 최의남의 공을 기려 비를 세웠다.
최의남은 주인집 아들을 매일 보살핀 까닭에 정작 자신의 늙은 어머니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자신이 주인집 아들을 섬기는 것처럼 시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한다고 처를 아홉 번이나 내쫓았다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 함양 박씨 문중 사람들이 정려각 앞에서 제사를 올린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사노에 대한 국가적 표창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