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30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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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濟開國功臣敎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성호 |
수급 시기/일시 | 1392년 10월 - 이제 개국공신교서 수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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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6월 19일 - 이제 개국공신교서 보물 제129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6월 27일 - 이제 개국공신교서 국보 제32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제 개국공신교서 국보 재지정 |
소장처 |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
성격 | 고문서|교서 |
관련 인물 | 이제 |
용도 | 공신녹권 |
발급자 | 태조 이성계 |
수급자 | 이제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 이성계가 이제에게 내린 개국공신 교서.
[개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공신에게 교서와 녹권을 발급하는 제도가 지속되었다. 개국공신교서는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각각 발급되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999년 6월 19일 보물 제129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 27일 국보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1392년 7월 즉위한 이후 그해 10월 개국 과정에 공을 세운 이들을 가려서 개국 공신에 녹훈하였다. 개국 공신들에게는 공신 교서와 녹권이 내려졌는데, 이제(李濟)의 공신 교서 역시 그때 내려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개국 공신 교서의 원본은 이제에게 내려진 공신 교서가 유일하다.
[형태]
비단 재질의 필사본으로, 세로 32.5㎝, 가로 94.5㎝의 두루마리[卷軸] 형태로 제작되었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 교서는 정형적인 서식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문서의 첫 부분에 ‘교(敎) 수취자 성명 서(書)’를 적은 다음 ‘왕 약왈(王若曰)’ 이하에 공을 치하하고 공신으로서 받게 될 상전과 특권을 적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의 첫 부분에는 “교(敎) 순충좌명 개국 공신 흥안군 겸 의흥친군위 절제사 지경연사 이제”라고 적혀 있다. 이제는 1등 공신에 녹훈되었고, 본인을 비롯하여 3대를 거슬러 추층(追贈)되고, 노비와 토지, 금대 1요, 단자 2필, 견자 7필을 하사받았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실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개국공신교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조선 전기 공신 교서로서 후대의 공신 교서와는 작성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는 점도 문서 제도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문서에 ‘고려 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조선 개국 초 국왕의 명의로 발급하는 문서에 ‘고려 국왕지인’이 사용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