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35 |
---|---|
한자 | 河載華 |
영어음역 | Ha Jaehwa |
이칭/별칭 | 복영(復榮),여인헌(與人軒)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선비|독립운동가 |
---|---|
아버지 | 하성운(河聖運) |
어머니 | 재령이씨 이인동(李麟東)의 딸 |
아내 | 광주노씨 노이정(盧以挺)의 딸 |
출신지 | 진주(晋州) |
성별 | 남 |
생년 | 1860년 |
몰년 | 1937년 |
본관 | 진양(晋陽) |
자 | 복영(復榮) |
호 | 여인헌(與人軒) |
[정의]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복영(復榮), 호는 여인헌(與人軒).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성운(河聖運)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로 이인동(李麟東)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노씨(光州盧氏)로 노이정(盧以挺)의 딸이다.
[생애]
1860년(철종 11)에 출생하여 189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천품이 강직하고 효제충신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부귀현달을 구하기보다 평생 자기수양을 위한 학문에 정진하였다. 지역 내 유림행사에 솔선 참여하여 예의 법도를 전수하였다.
국권 상실 후에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국권회복의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19년 유림측에서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新幹會) 창립 준비 발기인으로 활동하였고, 김창숙(金昌淑)의 활동을 지원하던 중 1927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편,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덕천서원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된 것을 1930년 다시 복원하는 데 앞장섰다. 1937년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3년 남산에 건립된 파리장서비(巴里長書碑)에 하재화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