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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008
한자 曺淑沂
영어음역 Jo Sukgi
이칭/별칭 문위(文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판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34년(세종 16)연표보기
몰년 1509년(중종 4)연표보기
본관 창녕(昌寧)
문위(文偉)
대표관직 이조좌랑|대사헌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 자는 문위(文偉). 현령을 지낸 조안중(曺顔仲)의 아들이다.

[생애]

1434년(세종 16)에 태어나 1475년(성종 6) 문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에 발탁되었다. 1478년 이조좌랑에 재직 중 평안도에 파견되어 민심을 회유하였다. 1479년 건주위(建州衛) 여진을 정벌할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참전하였고, 이듬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 독전하여 공을 세우고 3관등이 특진되었다.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비변책을 건의하고 노년의 대부분을 병영 수비에 바치는 등 국방에 공헌하였다.

1486년 강릉부사와 의주부사를 지냈는데 1488년 경상도 진주에 사는 자식의 혼사에 내왕하면서 관청의 말을 사용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면직당하기도 하였다. 1491년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고,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500년(연산군 6)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1507년(중종 2)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넓은 토지를 점유하고 경주부민을 부려 경작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1509년 별세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4「문과조(文科條)」에 이름이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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