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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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溫 |
영어음역 | Jeong On |
이칭/별칭 | 우곡(偶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상사리(上寺里) 우곡촌(隅谷村)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고병훈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진주 출신. 호는 우곡(偶谷). 정승을 지낸 정석(鄭碩)의 아들이다.
[생애]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청맹(靑盲 : 겉은 멀쩡하나 실제는 눈이 안 보임)을 앓는다고 핑계대고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말년에는 진주 사봉면 사곡리에 우곡정(隅谷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으므로 신하를 보내 그 진위를 살펴보고자 솔잎으로 눈동자를 찔러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집안 식구나 하인도 그 연유를 알지 못하더니 어느 날 혼자 앉아서 좌우에 사람이 없었는데 닭과 병아리가 와서 마당에 있는 곡식을 쪼아 먹자 공이 낮은 소리로 “주주”라고 하므로, 부인이 시험해보고자 말하기를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라 하니, 공이 말하기를 “소리만 들었지 물건은 보지 못하였다.”라 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상혼과 추모]
1694년(숙종 20) 지방유림의 발의로 정강서원(鼎崗書院)에 배향되었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