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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872
한자 鄭光益
영어음역 Jeong Gwangik
이칭/별칭 술원(述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태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성별
본관 영일(迎日)
술원(述遠)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영일. 자는 술원(述遠). 학포(學圃) 정훤(鄭喧)의 후손이다.

[생애]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정광익은 덕목이 높고 입지가 확고하였다. 번암(樊菴)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문하에 있었는데 원릉(元陵)의 문제로 여론이 일변하였을 때에도 성품대로 스스로를 지켜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가는 집에 걸어놓은 편액을 수선당(守先堂)이라 불렀는데 그의 선대의 뜻을 계승한 것이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08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원릉(元陵)의 문제로 여론이 -> 지명 태깅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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