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영일. 자는 술원(述遠). 학포(學圃) 정훤(鄭喧)의 후손이다.
[생애]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정광익은 덕목이 높고 입지가 확고하였다. 번암(樊菴)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문하에 있었는데 원릉(元陵)의 문제로 여론이 일변하였을 때에도 성품대로 스스로를 지켜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가는 집에 걸어놓은 편액을 수선당(守先堂)이라 불렀는데 그의 선대의 뜻을 계승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