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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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團體 |
영어음역 | Yugyo danche |
영어의미역 | Confucian organizati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손병욱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하는 유교적 신념을 공동체적으로 구현하는 단체.
[개설]
조선조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숭상하였다. 그리하여 유교의 가르침과 덕목이 일상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서 생활화 되었다. 인간의 삶을 규율하는 온갖 형식과 규범치고 유교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유교단체란 유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각종 단체로 볼 수 있으며,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유교단체 가운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도 있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단체도 있으며, 아울러 최근에 와서 새로이 생겨난 단체들도 있다.
과거에 있었던 유교단체들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조직인 향교와 서원 같은 것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향약(鄕約)에 바탕을 둔 향촌사회의 각종 계 조직 혹은 문인들이 선현의 정신을 기리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만든 각종 유계(儒契) 같은 사적인 모임도 유교 단체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립대학격인 성균관과 국립중등학교 격인 향교는 요즈음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립학교격인 서원은 강학기능과 제향(祭享)기능을 주로 하는 사액서원과 선현의 제향을 주로 하는 향사(享祀)서원으로 나눌 수 있다. 비록 옛날에 비해서 그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지만 역시 나름대로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향약의 경우는 그 모습이 문서로나 남아있을 뿐, 인구의 유입과 변동이 심한 현대사회에 향촌사회라고 하여 향약이 작동하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계 조직 역시 유명무실해진 경우가 많다. 다만 유계의 경우는 후손들의 성쇠에 따라 번성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최근에 와서 새로이 생겨난 유교조직으로는 성균관-향교 및 유도회(儒道會) 조직을 들 수 있다. 기존에 없던 유도회 조직이 생겨남으로써 성균관-향교 조직과 상호보완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외에 언급되어야 할 유교단체로는 언론단체와 학술단체를 들 수 있다. 유교를 대표하는 언론단체로는 유교신보(儒敎新報)를 들 수 있다. 유교의 경전, 교리 및 성현과 유학자의 유교사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학술단체로는 유교학회, 공자학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방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단체로는 남명학연구원과 남명학연구소 등을 들 수 있다.
[진주의 향교 조직]
향교는 성균관 산하 조직이다. 성균관은 유교를 총체적으로 관장하며, 이 가운데 주된 조직이 전국 231개소에 산재한 향교이다. 현재 성균관 산하에 각 시·도별로 시·도본부가 있다. 과거 서울에는 성균관 외에 지방의 향교에 해당하는 국립중등학교로서 사부학당(四部學堂)이 존재하였다. 향교와는 달리 문선왕묘(文宣王廟)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성균관은 고려 말기와 조선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명칭으로서, 학궁(學宮) 또는 반궁(泮宮)이라고 하였다. 성균관 입학자격은 생원·진사등 사마시 합격자에게만 한하여 부여되었다. 조선 초에 완비를 본 성균관의 시설은 임진왜란 시에 모두 불타버리고 1601년(선조 34)에 재건에 착수, 6년이 지난 후 대체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 후 고종 때까지 새로운 시설과 개수 확장 사업을 계속하였다.
문묘(文廟)는 성균관뿐만 아니라 지방의 향교와도 위패를 봉안한 내용이 같았다. 다만 사학(四學)은 예외였다. 문묘에서 향사되는 인물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가 달랐고, 조선시대에도 전·후기가 다르다. 지금 현재 대성전에 봉안된 위패는 공자를 비롯한 사성(四聖: 안자, 증자, 자사, 맹자), 공문십철(孔門十哲), 송조 육현(六賢)의 위패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십팔위(十八位)의 위패 역시 같이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춘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행하고 있다.
진주향교는 경남본부 산하의 28개 지방향교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진주시 옥봉북동에 소재하며 지방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향교는 987년(고려 성종 6)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창건하여 국자감으로부터 경학 및 의학박사를 파견·수강하도록 하였다. 1011년(현종 2)에 서재(書齋)를 중건하고 수학원(修學院)→학사(學舍)→서재→사교학당(四敎學堂) 등으로 개칭하였다. 1398년(조선 태조 7)에 문묘를 창건하고 향교로서 성균관으로부터 훈도·교관·교수 등이 파견되었으며, 1558년(명종 13)에 비봉곡(飛鳳谷)으로 이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자, 1603년 구지인 하대(下臺)로 이전재건(移轉再建)하였다가 1644년(인조 22) 현 위치인 상대에 문묘를 이건하였다.
그 후 1802년(순조 2)과 1907년에 중수를 가하였고 그동안 이건하지 못하였던 명륜당과 풍화루(風化樓)를 1961년에 이건하였으며, 1971년에 전교 하병렬(河炳烈)의 주관으로 국비 보조와 개인 찬조를 얻어 일대보수공사를 완료하였고, 1986년에는 건평 20평의 사교당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진주향교에서는 대성전에 오성(五聖)과 송조이현(宋朝二賢)의 위패를, 동·서무에 우리나라 십팔현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고 매년 음력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한다.
[진주의 유도회 조직]
1945년 8월 광복 이후 10월에 전국 유림 2,500여 명이 성균관 명륜당에서 첫 회합을 하여 유도회 창립총회를 열어 유도회 총본부가 탄생되었고, 위원장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을 선출하였다. 유도회는 문선왕 공부자의 도덕을 근간으로 하는 국민의 윤리도의정신을 함양케 하고 수·제·치·평의 대도를 천하에 선포하여 이를 실행케 할 목적으로 전국 500만 유림의 총의에 의하여 설립된 유자(儒者)의 총림(叢林)이며 성균관과 지방향교 및 성균관대학교의 발전에 관한 사업과 기타 교육·교화·학술 등에 관한 사업을 경영하였다.
그 조직을 보면 총본부 산하에 시도본부-시군지부-읍면지회-이동지회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진주 유도회는 시군지부에 속하는 조직으로 회장이 주관한다.
[진주의 유교 단체]
진주의 유교 단체로는 위에서 든 향교와 유도회 외에 각종 유계가 있다. 많은 유계를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 대신, 유림들의 친목단체 가운데 셋만 언급하겠다.
우선, 이동계(二同契)를 들 수 있다. 이동은 “동성상응(同聲相應), 동기상응(同氣相應)”에서 따 온 말이다.
다음으로 이이계(二以契)를 들 수 있다. 이이는 『논어』의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익(以友補益)”에서 따 온 말이다.
마지막으로 송백회(松柏會)를 들 수 있다. 이제 유교 관련 학술단체로는 남명학연구원과 남명학연구소가 있다. 남명학연구원의 경우 1986년 발족한 이래 『남명학연구논총』을 발간하기 시작하였는데, 2004년 기준 제13집을 발간하였다. 아울러 『선비문화』라는 제호의 계간지를 2004년 봄부터 현재 2011년 가을호(제20호)까지 발간하고 있다. 남명학연구소는 경상대학교에 소속된 연구소로서 1990년 발족하였으며, 발족 이후 『남명학연구』라는 학술논문집을 발간하기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 제30집을 발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