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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628
한자 徐禮元
영어음역 Seo Ye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서인원
성별
몰년 1593년연표보기
대표관직 진주목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당시 명사로 이름을 날린 서인원(徐仁元)의 동생이다.

[생애]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숲속으로 도망쳐 있다가 살해당하였다. 본래 힘은 세었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 무장으로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형 서인원이 당시 존경받던 명사였기 때문에 그 덕으로 요지의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발탁되었다.

[활동사항]

1585년(선조 18) 함경북도 회령의 보을하진첨절제사(甫乙下鎭僉節制使)로 있으면서 정탐의 임무를 띠고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 땅에 들어갔으나 80여명의 부하를 모두 잃고 패주한 죄로 종성(鍾城)에 수감되었다. 그 뒤 석방되어 김해부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성을 수비하던 중 왜적이 보리를 베어다가 성의 높이와 같게 쌓고 쳐들어오자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패주하였다. 그 뒤 의병장 김면(金沔)과 협력하여 지례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을 격퇴하고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왜적에 항거하였다. 그러나 김시민은 적의 총탄을 맞아 병석에 있다가 사망하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에게 발탁되어 진주목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왜적의 침입을 받아 패주하다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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