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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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昌舞 |
영어의미역 | Dance of Hwang Ch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황창(黃昌)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추는 검무.
[개설]
신라의 7세 소년이었던 황창랑이 뜻을 품고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어 이름을 날렸는데,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불러들여 칼춤을 청하자 이 틈을 타서 백제의 왕을 찔러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춤이다. 황창랑을 ‘관창’으로 보는 설이 있다.
[구성]
이 춤은 본래 신라에서 만들어져 천년을 전하여 온 것으로서, 사람들은 이를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풍류라고 한다. 「황창무」의 끝에 가서는 학무로서 춤을 끝을 내는데 이는 새로 생긴 놀음이다.
「황창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학무는 이렇다. 먼저 아직 채 피지 않은 연꽃 한 떨기를 대청 가운데 놓고 두 기생이 나와 춤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좀 있다가 백학이 들어와 춤을 추는데, 백학의 역할은 오로지 남자가 한다.
이때 두 기생은 물러나고 학이 홀로 춤을 추면서 주둥이로 연꽃의 꽃봉오리를 쪼면서 깨트린다. 그리하여 연꽃 가운데서 머리에 평정건을 쓴 한 소녀가 나와서 함께 춤을 춘다. 그러다가 학이 주둥이로 소녀를 몰아 들어가면서 이 춤은 끝이 난다.
[의의와 평가]
「황창무」가 소개된 『교방가요』는 1862년 진주목사를 역임한 정현석이 쓴 책이다.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많이 공연된 춤인 관계로 정재의 요소가 많지만, 「황창무」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나라 최고의 춤이며 모든 검무의 원조가 되는 춤이다. 진주 검무 또한 이 춤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