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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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項莊舞 |
영어의미역 | Dance of Hang Jang (or Xiang Zhu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조선 후기 공연되었던 향악정재의 하나로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 고조 유방(劉邦)의 초(楚)와 한(漢)나라 사이의 승부를 정재화한 무극.
[개설]
사마천의 『사기』「항우본기」에 기록된 중국 진나라 말기의 초한승부에 연원을 두고, 이들의 ‘홍문연’(鴻門宴) 고사를 의방(依倣)하여 이 장면만을 정재화한 것이다. 이러한 항장무는 진주의 교방에도 전하여져, 진주목사를 역임한 정현석이 지은 『교방가요』(1872년)에 기록되었다. 당대의 식자층에게는 잡극으로 인식되었으나 널리 유행되어 궁중에서도 자주 공연되었다.
[구성]
중국 진(秦)나라 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항우와 유방이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암투하던 차에 홍문(鴻門)에서 연례를 갖게 되었다. 이 때 항우의 조카 항장(項莊)은 검무를 추다가 유방을 죽이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항장무는 이 홍문연의 이야기를 무극화한 것이다.
반주음악은 반드시 ‘대취타(大吹打)’를 쓴다. 항장무에는 항우, 우미인, 패공, 범증, 장량, 항장, 항백, 번쾌, 집사 2명, 청기수 2명, 홍기수 2명, 세악수 6명, 취고수 8명, 찬탁이 등장한다.
[현황]
조선 후기(19세기 초) 평안도 산천 지방의 교방에서 형성되어 사자무 등과 함께 1873년(고종 10)에 처음으로 궁중에 유입된 후 공연되었다. 궁중정재로서의 항장무에는 항장의 검무 이외에 독립정재인 검무가 정재 속의 정재로 편입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허영일 교수의 연출로 복원이 시도되어 세 차례에 걸쳐 무대에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