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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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彰烈祠重修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of the Renovation of Changyeolsa Temp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6 |
집필자 | 정규식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전승되는 창열사(彰烈寺) 중수와 관련한 설화.
[개설]
창열사 중수 전설은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다루어진 소재였다. 귀신담은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령(怨靈)과 같은 귀신 그 자체가 아니고, 이야기에 투영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다. 일반적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민담의 경우 초현실적 소재를 다루는 허구로 여겨지지만 전설에 결합된 이들 소재는 반대로 역사성과 사회성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채록/수집상황]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의 채록 자료는 1980년 8월 12일에 조사자 류종목이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박세제는 64세의 남성으로서 진주의 대표적 전설로 ‘비봉산과 봉의 알자리’를 이야기하고 이어서 구술하였다. 박세제는 창열사 중수 전설은 역사에 기록이 있는 것이니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열사는 김시민(金時敏) 공, 김천일(金千鎰) 공, 최경회(崔慶會) 공, 황진(黃進) 공 등의 신위 39위와 전장병(戰將兵)의 넋을 모신 사당이다.
[내용]
숙종 때 창열사가 낡아 위패들이 비를 맞게 되어 중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진주병사는 관심이 없었다. 안타까웠던 진주목사가 몇 번 중수를 권했지만 진주병사는 계속 거절했다. 결국 진주목사 단독으로 중수를 했는데, 그 날 밤 진주목사의 꿈에 선열들이 나타나 감사를 하고 진주병사는 벌을 준다고 했다. 진주병사가 그 날 밤 급사한다.
또 숙종 때 창열사에는 정충단이 만들어졌는데, 왕명에 의해 위패를 더 못 넣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다시 위패가 많이 늘었다.
[모티브 분석]
창열사 중수 전설은 창열사라는 역사적 증거물과 초현실적 내용이 결합함으로써 선영이나 조상에 대한 제례 풍속과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을 설화 속에 잘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창열사 중수 전설은 역사적 전설에 속하지만 그 내용은 귀신과 인간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일반적으로 귀신담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인간과 귀신이 어떻게 접촉하고 위기를 맞으며 서로 갈등하며, 그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귀신담에서 인간과 귀신의 관계는 일방적인 대립이나 상호 보완, 경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설화와 같은 보완적 관계는 세계와의 조화를 지향하는 전통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전설과 결합한 귀신담은 초현실적 소재를 다루지만 허구적 흥미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당대인들의 귀신관과 당대의 역사, 사회상을 민감히 반영하고 있다. 창열사 중수 전설은 창렬사와 정충단의 유래와 근원을 설명하며, 지역 문화의 존립 근거를 마련해 준다. 동시에 선영과 조상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설화 속에 구체적으로 되살리고, 새롭게 해석하여 지역의 전통을 주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지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