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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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釣隱韓先生師友錄 |
영어의미역 | Friends and Tutors of Master Jo Eunhan |
이칭/별칭 | 조은사우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진주대로 50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갑진 |
[정의]
조선 중기의 유학자 한몽삼의 사승관계(師承關係) 및 교우관계를 기록한 고문헌.
[개설]
한몽삼(韓夢參)[1589~1662]은 자(字)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으로 1589년 경상남도 진주시 정수(현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정수)에서 태어났다. 20세 되던 1608년 황암(篁巖)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서 배우다가 24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였다. 이후 능허(凌虛) 박민(朴敏),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등에게 차례로 수학하였고, 1627년 39세 때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과 함께 덕천서원에서 『남명집』교정에 참여하는 등 강우학맥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조은은 59세 되던 해에 함안군 원북 적암(適嵒)에 집을 짓고 향중사인(鄕中士人)으로 살다가 1661년 고향 정수로 돌아와 이듬해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702년 조은은 진주 금산의 임천서원에 배향되었고, 영조 5년에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다.
조은의 흔적은 현재 진주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촉석루 의암 옆 절벽에 새겨진 ‘천추의열 일대장강(千秋義烈 一帶長江)’의 각서(刻書)와 충무공 김시민의 ‘전성각적비’의 글씨이다. 또한 조은의 활동 면모를 전체적으로 잘 보여 주는 기록이 조은한선생사우록(釣隱韓先生師友錄)이다.
[구성]
『조은한선생사우록』은 7권 1책으로 1권에는 선생의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연보(年譜)가 실려 있으며, 2권에는 선생의 사우관계(師友關係)를 확인할 수 있는 ‘한강문인록(寒岡門人錄)’, ‘장여헌문인록(張旅軒門人錄)’, ‘황암문인록(篁巖門人錄)’, ‘쌍계수창제현(雙磎酬唱諸賢)’ 등이 기록되어 있다.
권3에는 ‘퇴계이선생자비명(退溪李先生自碑銘)’과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퇴계선생묘갈명후서(退溪先生墓碣銘後叙)’를 실었고,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남명조선생묘비문(南冥曺先生墓碑文)’을 기록하고 있다.
권4에서는 ‘한강선생행장략(寒岡先生行狀略)’과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황암선생묘갈명(篁巖先生墓碣銘)’ 및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하겸재묘갈명(河謙齋墓碣銘)’ 등 98명의 유학들에 대한 묘갈(墓碣) 등이 실려 있다.
4권에서 5권과 6권의 구분은 모호하고 7권으로 이어져 있다. 권7에는 선생과 함께 임천서원에 배향된 목사 이규년, 신암 이준민 등을 기록해 두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은한선생사우록』에는 조선 중기 경상우도를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강우사림의 교우사승관계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