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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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南氏 |
영어음역 | Uiryeong Namssi |
영어의미역 | Uiryeong Na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김학수 |
세거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 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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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 두소 |
입향시기/연도 | 1450년 이후 |
성씨시조 | 남민(南敏) |
입향시조 | 남기(南䄎) |
[정의]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연원]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김충은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경덕왕으로부터 여남(汝南)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는 영양,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의령남씨의 후손들은 중시조 남군보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입향경위]
지곡 남기는 145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과 홍문관의 벼슬을 하였으나 세조가 즉위하자 귀머거리를 칭탁하고 종제인 남포와 함께 밀양으로 물러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을 좇아 함께 지내다가 진주의 두곡으로 이사하여 후손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세거현황]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 두소는 남기가 진주로 입향한 이래 500여 년 동안 세거한 곳으로 묘소와 재실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인물]
의령남씨는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써 중앙정계의 중추에 진출하여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개국공신 남재(南在)·남은(南誾) 형제 중 남재의 후대에서 많은 경상(卿相)과 석학이 나왔다. 남재의 손자 3형제 중 남지(南智)는 좌의정, 남간(南簡)은 예문관 직제학, 남휘(南暉)는 태종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이밖에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남곤(南袞), 세조 때 장군 남이(南怡),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 소북(小北)의 영수 남이공(南以恭), 소론(少論)의 영수 남구만(南九萬), 영조 때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남유용(南有容),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남공철(南公轍), 철종 때 대제학을 지낸 남병철(南秉哲), 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남이웅(南以雄), 정묘호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성을 사수하다가 자결, 순절한 남이흥(南以興)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