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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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妓祠重建記 |
영어의미역 | Record of the Reconstruction of Uigisa Shi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손병욱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의기사의 중건에 관한 기문.
[개설]
진주성 내에 소재한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으로 유인하여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이러한 논개의 의로운 기개를 기리고자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南德夏)가 이 사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의기사는 6·25전쟁 때 촉석루와 더불어 불탔으나 1956년 진주의기창렬회에서 재건하였다. 현재 사당 안에는 논개의 영정이 있고, 그 앞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아울러 청마루 서까래 위에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쓴 「의기사기(義妓祠記)」를 비롯하여 매천(梅泉) 황현(黃玹)과 진주기생 산홍(山紅)이 각각 쓴 「의기사감음(義妓祠感吟)」이라는 시가 판각되어 걸려 있다.
[내용]
「의기사 중건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지어졌는지 불명확하다. 다만 정약용이 1780년(정조 4)에 지은 「의기사기」를 일명 ‘의기사중수기’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것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띤다. “의랑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왜장을 꾀어 강 가운데 돌에서 마주 춤을 추다가 춤이 무르익자 끌어안고 소에 뛰어들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