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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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飮食店 |
영어음역 | eumsikjeom |
영어의미역 | restaurants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이수진 |
[정의]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
[개설]
음식점이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생겼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의 의식주생활의 기틀이 잡힌 때부터라고 추측된다. 문헌상으로는 김유신(金庾信)이 ‘천관(天官)의 술집’에 드나든 데에서 비롯되는데, 지금의 기생집과 같은 곳으로 ‘술과 음식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변천]
1.삼국시대의 주막(酒幕)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성하면서 사원에서 재(齋)를 올리고 난 다음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생겨났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행사하는 곳에는 노천음식점이 생기기 마련이며, 따라서 자연적으로 음식물을 제공하여 판매하는 업체들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주막을 탄막(炭幕)이라고도 한다. 시골길에 접어들면 큰길가에는 주막이 있어서 술과 밥을 팔고 잠을 재워주었다. 주막은 시골길뿐만 아니라 큰 도시와 작은 고을에도 있었고, 장터·선착장·광산마을 등에도 있었으며, 각 요소를 잇는 길목에도 설치되었다.
유명한 주막거리로는 경기도 소사, 오류동, 문경새재, 경상남도 화개면, 『요로원야화(要路院夜話)』의 무대인 아산 등지가 있었다. 이들 주막에는 일정한 간판이 없었고, 입구에 좌판을 벌여놓고 쇠머리나 돼지발 삶은 것 등을 늘어놓았는데, 초가지붕 위로는 바지랑대에 용수를 높이 달아놓는 특징이 있었다.
큰 도시의 주막밀집지대에서는 주막의 이름을 손님들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주막에 감나무가 있으면 감나무집, 주인의 얼굴에 검은 점이 있으면 점박이집, 주인이 욕을 잘하면 욕쟁이집 등과 같은 작명 방법이다.
주막의 마당에는 평상이 몇 개 놓여 있고 방도 여러 개 준비되어 있어 숙식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개는 아궁이 위의 솥이 주파가 앉아 있는 방이나 마루에 붙어 있어서 주파가 그대로 앉아서 술이나 국을 뜰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한 솥에는 국이 끓고 있고 또 다른 솥에서는 물이 끓고 있어서 주파는 술양푼을 연방 끓는 물에 담가 거냉을 하여 술잔에 따르곤 한다.
2. 조선 말기의 주점(酒店)
조선 말기의 서울에는 모주(母酒)와 비지찌개를 파는 노상주점이 생겨서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를 메웠다. 모주란 막걸리를 걸러낸 술지게미를 다시 우려낸 것이다. 개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옛 주막의 모습도 점차 바뀌기 시작하였다.
내외주점(內外酒店)은 여염집 아낙네나 과수댁이 생활이 궁핍해지자 손님과 직접 얼굴을 대하지 않은 채 술상만 차려주던 곳으로, 술을 마시고 돈을 상위에 얹어놓고 나가는 주점의 형태를 말한다.
목로술집은 길가에 안주를 늘어놓고 술을 파는 곳을 뜻하며, 서서 술을 들이켜고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는 곳을 선술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자를 고용하여 술시중을 들게 한 색주가(色酒家)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개화기와 근대의 음식점
개화기에는 조선왕조가 일제에 의해 패망하면서 궁중의 조리사(숙수)나 기생들이 궁궐 밖으로 나와 차린 고급 음식점들이 있었다.
지금의 세종로 동아일보사 근처의 자리에 명월관이라는 고급요정이 있었는데, 이는 1909년 당시의 궁중음식관계 책임자였던 안순환(安淳煥)에 의하여 세워졌다. 명월관은 기생의 춤과 노래는 물론 궁중음식을 일반인들에게 내놓게 되었다. 당시 고급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으로는 장춘관·식도원·국일관·고려관·태서관 등이 있었다.
1920년 조선호텔이 세워졌고, 그 무렵 YMCA그릴과 일본인이 경영하던 청목당(靑木堂)에서는 서양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미 일본인들이 한양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왜색의 고급요정이 활개를 치게 되었으며, 이들 음식점은 일본기생과 일본식 요리를 선보이면서 친일파들의 집회장소로 애용되기도 하였다.
그 중 화월(花月)·화선(花仙)·에비수·백수(白水) 등이 유명하였고, 거리에는 일본의 우동(국수)집이나 단팥죽집들이 생겨나면서 서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였다.
임오군란 직후에는 약 3,000명의 중국군인이 조선에 주둔하였고, 이와 함께 다수의 중국민들이 들어와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였으나 그 일부는 적은 자금으로 중국호떡집이나 중국국수집을 경영하였다고 한다.
음식점들은 1900년대 초기 서울의 태평로2가·명동·종로5가·서소문동·소공동 등에 밀집되어 있었다. 그 당시 이곳 일대에는 일반 서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 상류층을 위한 접객장소로 애용되었다.
전통적인 주막이나 탕반류를 파는 음식점도 있기는 하였으나, 이미 새로운 서양식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개화와 함께 도시에 들어선 고급요정이나 서양식 음식점들에 서민들이 출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이 시기까지의 음식점이란 여전히 보편화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4. 현대의 음식점
우리나라의 음식점들은 이러한 역사를 거쳐 지금도 끊임없이 개선되고 개발되고 있다. 사회가 산업화됨에 따라 직장인들의 기본적인 식사 해결을 위한 음식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외식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대형화·고급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프랑스·이탈리아·파키스탄·인도 등의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문음식점도 늘어나고 있으며, 외국의 음식산업체의 국내 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아울러 교통의 발달과 자동차의 보급으로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은 교외로 나가서 식사를 즐기는 풍속이 생기기도 하였다. 현재, 가족과 연인 단위를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진주의 음식점 현황]
2010년 『통계연보』에 의하면, 경상남도 진주시 소재 식품접객업소는 총 5,870개 업체였다. 이 중 휴게음식점은 676개, 일반음식점이 4,596개, 제과점 134개, 단란주점 142개, 유흥주점 288개, 위탁급식영업 34개로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에 등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 소재의 음식점은 총 29개이며, 인터넷 포탈서비스인 ‘네이버’에 등록된 경상남도 진주시 음식점의 경우, 89개 업종 4,417개 업체로 나타나고 있다.
2011년 현재 한국관광공사에 등록된 진주시의 대표적인 음식점은 한식 24곳, 양식 2곳, 일식과 중식이 각각 1곳, 이색음식점 1곳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음식은 물론 경상남도 진주시의 유서 깊은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