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630 |
---|---|
한자 | 雲水堂-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of Unsudang Hal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
집필자 | 노재경 |
성격 | 가족담 |
---|---|
주요 등장인물 | 부자 사위|가난한 사위 |
관련지명 | 운문마을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서 전승되는 가족담(家族談).
[채록/수집사항]
1980년 8월 10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김숙분(여, 당시 66세)이다.
[내용]
옛날 금곡면 운문마을에 사는 하씨(河氏) 집안에 초상이 났다. 사위 두 사람이 서로 비석을 세우려고 다툼을 벌였다. 한 사위는 재력이 있고, 한 사위는 가난하였다. 재력이 있는 사위는 놋쇠로 비를 만들어 세워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려 하였고, 가난한 사위는 놋쇠로 만든 비보다는 돌비가 더 오래 보존될 것이라며 돌비를 만들어 세우려고 했다.
두 사위가 계속 다툼을 벌이자, 문중에서는 누구든지 먼저 만들어 오는 쪽의 것을 세우기로 하였다. 결국 돌비가 먼저 도착하여 장인 묘 앞에 돌비를 세우게 되었다. 놋쇠로 비를 만든 사위는 비를 옮겨오던 중간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비를 소(沼)에 버렸다.
운문마을은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후손들은 그 때 돌비를 세운 것을 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돌비를 세우지 않고 놋쇠로 만든 비를 세웠더라면 중간에 없어졌을텐데, 돌비가 세워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사위 두 사람이 장인의 묘비 세우는 일로 기세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재력과 인물됨의 차이에서 보듯이 평소에도 잘 지내는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나, 장인상을 당하면서 그 갈등이 고조된 것으로 보인다. 재력으로 겉멋만 내려 한 사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돌비가 세워지는 이 민담을 통해 조선 초의 상례 문화의 일단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지역의 번족(繁族)인 운수당 하윤의 가족사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