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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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門-徐塚 |
영어의미역 | Seo's Grave in Unmun Villag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
집필자 | 노재경 |
성격 | 풍수담(風水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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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소금장수 서씨 |
관련지명 | 운문마을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서 전승되는 풍수담(風水談).
[채록/수집사항]
1980년 8월 11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차현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상선(남, 당시 47세)이다.
[내용]
진주시 금곡면 운문마을은 진주하씨의 집성촌이다. 마을이 풍수적으로 대명지(大名地)인데, 십이 대에 걸쳐 만석꾼으로 살면서 누대에 걸쳐 학자, 관리 등을 배출하여 명망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러한 만석꾼 하씨의 집 뒤에 서총(徐塚 : 서씨 무덤)이 있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소금 장사를 하며 피란을 갔다. 그런데 운문마을 근처에서 왜군을 만나게 되었다. 서씨는 급히 근처에 있는 썩은 고목나무 숲에 몸을 숨겨 위기를 넘겼다.
그 뒤, 서씨는 운문마을로 들어오게 되었고, 머슴살이를 하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무덤을 만석꾼 집 뒤 대밭에 썼다. 무덤을 쓴 후 서씨 집안은 번창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큰 전란 직후라 하씨 집안이 전란을 피해 운문마을을 떠나 있었는데, 그 틈에 명당을 알아본 서씨 집에서 밀장(密葬)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서씨가 왜적을 피해 숨었던 썩은 고목나무 숲에도 흥미 있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이 숲은 당시 세도가였던 조판서 집안의 선영(先塋)이었다. 세도가 팔팔한 시절에 한 스님이 조판서의 집에 오더니 말했다.
“나무를 세워야지, 나무를 안 세우면 집안이 망한다.”
그러나 이 얘기를 들은 조판서 사람들은 스님을 혼쭐내어 쫓아내 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이번에는 점쟁이로 변장하여 조판서 집에 들러 산소를 봐주겠다고 하였다.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조판서 집에서는 점쟁이로 변신한 스님을 극진히 대접하여 선영으로 안내하였다.
조판서의 묘는 지네혈이었다. 그런데 안산(案山: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은 삵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산은 닭의 모양으로 지네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삵 때문에 닭이 지네를 먹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삵 모양의 안산과 닭 모양의 산 사이에 숲을 만들어 닭이 지네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집안이 망하지 않는다고 조언을 하였다.
이러한 조언에 따라 조판서 집안에서는 숲을 조성하였고, 집안은 계속 번성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 무렵 숲의 나무들이 고목이 되어 썩어 버렸는데, 이 탓인지 조판서 집은 망하였고, 왜군을 피해 그 고목 속에 숨어들었던 서씨는 운문마을에 들어가 명당을 얻어 발복(發福)했다는 것이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명당에 묘를 써서 발복했다는 것이다. 설화 속에서 명당을 얻는 경우를 살펴보면, 평소에 적선을 하여 복을 받거나, 명당으로 알려진 땅을 기지를 발휘하여 차지한다든지, 혹은 몰래 밀장을 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운문마을의 서총은 밀장 형태로 얻은 명당으로 추측된다. 이 설화는 명당 발복설을 믿었던 조선시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