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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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碧梧堂懸板 |
영어음역 | Byeogodang Hyeonpan |
영어의미역 | Hanging board of Byeogodang Ha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42-1[남강로 626-10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명화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6월 7일 - 진주 벽오당 현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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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벽오당 현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현판 |
제작시기/일시 | 1578~1642년 사이[추정] |
제작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높이 | 100㎝ |
너비 | 220㎝ |
소장처 | 진양하씨 대종중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42-1[남강로 626-100] |
소유자 | 진양하씨 대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조선시대 진주의 향사당 내에 존재하고 있던 벽오당(碧梧堂) 건물의 현판.
[제작경위]
벽오당은 원래 조선 태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호정 하륜(河崙)[1347~1416]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자 태종(太宗) 임금이 직접 내린 교서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임금은 특별한 예우로 잔치를 베풀고 친필인 벽오당(碧梧堂) 현판을 하사하였다.
진주 향사당(鄕射堂) 뒤에 벽오당을 지어 160년간 유지하다가 민폐가 심하여 1578년(선조 11)에 진주목사 이제신(李濟臣)이 벽오당을 불태우고, 현판은 조명(朝命)에 따라 경모재(景慕齋)[진주시 대곡면 단목 소재]에 보관하였다. 이후 1824년(순조 24)에 오방재(梧坊齋)[진주시 미천면 오방 소재]로 옮겨 170년 간 보관하다가 1994년 다시 현 위치인 충의당(忠義堂)으로 이관하였다.
[형태]
가로 220㎝, 세로 199㎝ 크기이며, 송판 아홉 장을 연결하여 그 위에 돋을새김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벽오당(壁梧堂)’이라고 쓰여 있다. 이 현판을 달기 위하여 위쪽으로 3개의 구멍과 중간쯤에 2개의 구멍을 뚫어 놓아 이 현판이 원래는 약간 숙이는 모양으로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현판의 글씨는 해서(楷書)로 되어 있다.
[특징]
크기가 비교적 큰 현판으로 목재는 소나무이고 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옻칠을 한 검정바탕에 흰색으로 양각의 글씨를 표하였다. 그 결구가 균형이 완벽할 정도로 빈틈이 없다. 현판에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서체와 역사적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제작 시기가 1578~1642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6월 7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